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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죽어도 잊지 못할

사람은 사람을 통해 힘을 얻는다. 사람이 에너지의 구심점이다.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싸해지는 사람,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흔들리는 생의 버팀목이 되는 사람, 민들레 향기에 실려오는 소식만 들어도 작은 풀잎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 “널 믿는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던 넌 날 실망시키지 않을 거다. 너는 내가 믿는 내 친구니까” 주문 같은 너의 믿음은 이국땅에서 집시처럼 흔들리던 내 삶을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리사아빠 장례식을 치루고 온 날도 네 말을 떠올렸다. 절망의 바다에 허우적거릴 때도 내게 준 너의 믿음을 기억했다.

단 한 사람의 믿음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갇힌 벽 속에서 신음할 때면 너는 빛이 속도로 달려와 쳐진 내 어깨를 추스리게 했다. 별빛마저 슬픈 이국의 밤이 모질게 외로울 땐 혼자 국수 삶아먹고 우두커니 창가를 바라보며 안개꽃으로 떠오르는 유년의 추억이 그리웠다. 네가 내 친구여서 정말 행복했다.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나는 정말 싸가지 없는 친구다. 한국 방문 때나 큰 사고 안 터지면 연락을 안 한다. 이년 전 한국 간다고 연락 했더니 병원도 아니고 요양원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 일이! 저녁 잘 먹고 와인 한잔 마시다 기절, 전신 마비가 돼 요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라고 했다. 부랴부랴 찿아갔는데 넌 늠름하게 잘 견디고 있었다.

올 연말에 가족 사진과 카드를 보냈는데 문자가 왔다. “누가 뭐라던, 그동안 너의 이국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았고 참으로 충실 했음을 보는 듯해서 참 기쁘다. 우리의 삶이 다시 예전처럼 메워져 갈 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항상 지지한다.” ‘지지한다’는 그 말에 목이 메인다. “큰 살림 정리하고 이사 가면 힘들 텐데 이번 기회에 삶을 가볍고 단순화 한다고 생각해. 넌 잘 할거야. 넌 힘이 들 때 더욱 현명해 지지 않니” 라고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손가락 쓸 수 있구나! “살아있음 다시 만날 테니 밥 잘 챙겨먹고 기다려. 다시 만날 때까지.” “너야 말로 밥 잘 먹고” 너무 아파 위로도 못하고 우리의 대화는 서로 밥 잘 챙겨먹는 걸로 끝맺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삶이 아프고 속 시릴 때, 조각난 꿈의 흔적이 눈물로 흘러내릴 때, 나를 믿고 지지한다는 그 한마디는 얼마나 큰 용기로 절망의 강을 건너게 하는지.

우서방 사업 돕고 애 셋 키우고 화랑 운영하며 30여년 이국 생활하다 느닷없이 장편소설 쓰겠다고 했을 때 친분 있던 문학동네 유명 문인들은 자기 밥그릇 침해하는 외부 침략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에서 터지고 깨지고 돌아온 탕자처럼 누더기가 돼 고향땅 밟았을 때 친구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잘 생각했어. 나는 네가 꼭 그 길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전국여고생 백일장에 당선, 여류시인을 꿈꾸던 친구를 친구는 여태 믿고 있었다.

태양은 태양계에서 가장 크지만 내부를 눈으로 볼 수 없다. 태양은 밤 하늘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보다 130억배나 밝고 초당 6억톤의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에너지를 생성하며 매초 10톤 이상의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위력을 가진다. 태양처럼 속이 깊고 크지만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친구, 내 머리 위에 비추며 생명의 근원으로 태양광처럼 빛과 에너지를 주던 친구. 살아있어 정말 고맙다. 다음 귀향길엔 플라타나스 즐비한 강가를 손잡고 함께 걷자. 죽어도 잊지 못할 우리들의 우정을 새기며 평범한 것에 소중한 의미를 담는다. (Q7 Edition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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