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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역사적인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90년쯤 전의 일이다.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세계를 거세게 뒤흔들었던 사건이 이렇게 모두의 직접적인 기억에서 잊혀질 즈음에 대공황에 버금갈 수 있을 만한 사건이 생겼다. 이번엔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가 주요 원인이다. 혹자는 대공황보다 경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4천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게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90년 전에는 모두가 함께 땀을 흘리며 노력해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지만, 이제는 소위 사회적인 거리두기를해야 하니 몇배는 더 힘들다. 이런 재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어쩌면 절대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원인 파악이 중요한 만큼 평범한 우리에게는 아직 현재 진형형인 이번 사태를 이겨내야 하는 당면과제가 있다.

지난달에 실업률이 14.7%라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런 적이 없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확진자의 숫자가 최고점을 지나면서 하루빨리 경제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이탈리아에서는 국내외 관광객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프랑스에서는 학교를 열자마자 70명의 확진자가 나와서 다시 일부 학교 문을 닫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정책결정자들은 공중보건과 경기회복이라는 갈림길 앞에 서서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조심하면서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하면 걱정이 지나치며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반면에 하루라도 빨리 경제를 열자고 하면 개인주의적이고 공익보다는 사익만을 앞세우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이분법의 논리 앞에서 승자는 없이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만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바이러스가 100%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환경은 완벽한 살균장치를 갖춘 음압 병실뿐이다. 경제를 열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거나 혹은 사망자들 앞에서 계산기만 두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어느 수준에서는 타협을 해야 하는데,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학교와 가게의 문을 열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열고 나서가 문제다. 완벽한 제거가 어렵다면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으니 일단 문을 열면 예전처럼 지내도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큰 화를 키울 수 있다.

2015년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유행하던 시절에, 이비인후과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전체 환자 숫자가 오히려 평소의 삼 분의 일로 줄었다고 했다. 의사의 입장으로는 아픈 사람이 줄어든 것이 좋은 소식이지만, 병원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좋아하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손을 잘 씻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로 많은 사람들이 개인위생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호흡기 질환자가 줄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미국에서는 무려 백오십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가 10만에 육박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 군인의 숫자를 이미 넘어섰다. 바이러스에 걸려서 사망했으니 모두 자연사(병사)라고 하면 그뿐일까? 우리가 처음부터 대처를 더 잘했더라면 3만 명의 이상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에서는 1월 20일에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으니 이제 넉 달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지난 시간이 마치 4년처럼 느껴진다. 소위 피로감이란 것이 크다는 뜻이겠지.

그런 와중에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초기대응 실패를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고 투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참모들의 의견수렴은 내부적으로 할 일이고, 일단 국민 앞에 서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정책을 수정해야 할 일도 생길 것이다. 모든 예측모델은 현재 가용한 모든 정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수정이 필요하다. 우리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쓸 필요 없다고 했다가, 다시 쓰라고 하고, 전문가들은 쓰라고 하지만 나는 안 쓰겠다고 하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도 쓰지 않겠다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지하철역 바닥에 내팽개쳐져 체포되는 22세의 어떤 여성의 모습을 봤다. 그것도 어린 자녀 앞에서.

모두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며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전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정부가 감염을 막아주는 것도 아니고,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려 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제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비즈니스를 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떻게 열지 그리고 열어서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다.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바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경제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더는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고 인류 역사에 대재앙을 기록된 스페인 독감은 2차 유행 때였던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인혁 / 웨스턴 캐롤라이나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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