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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이야기

"그가 왔어." "또 왔네." "다들 조용히 해. 자리에 가서 앉아."

느린 걸음으로 한인 노인 한 분이 쓱 문을 열고 들어오자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속삭이듯 말하며 서둘러 의자에 가서 앉는다. 지하 회의실은 곧 조용해진다. 이곳은 윌셔와 노먼디 코너에 있는 미국 교회의 지하 회의실. 매주 토요일 오전 8시마다 인근 지역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다. 이 회의는 LA가 갓 설립한 주민국(Neighborhood Empowerment)에서 추진하는 지역 주민의회를 윌셔 지역에도 만들기 위해 모이는 준비모임이었다. 이들은 후버 불러바드에서 윌튼까지 이어지는 윌셔가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업주들과 주민들을 모아 주민의회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한인의 등장으로 수개월 째 투표는 미뤄졌다.

70년만에 처음으로 새 시헌장을 통과시킨 LA시는 당시 지역 주민들과 시의회, 그리고 시 행정당국들이 서로 긴밀하게 일한다는 방안으로 시 전역에 '지역주민의회'를 창설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설치된 기구가 바로 주민국이었고 각 지역은 주민의회를 구성하는 모임을 곳곳에서 갖고 있었다. 타지역 단체와 주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몫을 갖기 위해 열성적으로 모이는 것과 달리 당시 한인타운에서 이 모임에 관심을 가진 단체나 한인 주민들은 극소수였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매주 열리는 준비 모임에도 한인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주민의회 이름을 짓는 안건에도 '윌셔주민의회'로 하느냐, '윌셔센터주민의회'로 하느냐를 놓고 투표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한인타운은 이들에게 또 한인사회에서도 관심 밖이었다. 회의 참석자의 99%는 백인이다. 이 한인 노인을 제외하고 이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한인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이웃을 배려한다고 해도 소수계 중 소수계인 단 한 사람의 한인의 목소리를 회의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분은 혼자서 꼿꼿하게 주민의회 이름에 '코리아타운'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노우?(You Know?), 윌셔 불러바드에 한인들이 얼마나 많이 사는 줄 아나요? 게다가 비즈니스는 얼마나 많은지 알지 않습니까? 이곳 사무실 빌딩 숲은 한인들이 채우고 있어요."

구역을 정하고 주민의회 이름을 만드는 안건이 거론될 때마다 그는 손을 들었다. 느리지만 굵고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코리아타운'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자주 회의를 중단시켰다.

"한인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왜 그렇다면 이런 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거죠?" 진행이 막혀 답답한 회장이 텅 빈 회의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때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유 노우? 한인들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이 코리아타운이 아닌 건 아니죠. 이 회의가 진행되는 윌셔와 노먼디 밖으로 나가보세요. 얼마나 한인 비즈니스가 많은지 직접 볼 것입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그런 일이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취재도 지쳐갈 때쯤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라는 이름으로 결정됐다. 회의를 진행한 회장은 그를 가리키며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인들에게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다. 한인타운에 구성된 주민의회를 분리하겠다는 안이 시에 상정됐다는 보도에 "주민의회가 뭐냐"는 질문이 많았을 정도니. 그래도 그 이름을, 주민의회를 1.5세와 2세들이 손을 잡고 지켜내고 있다니 기쁘다. 이 모습을 보면 그분은 뭐라 하셨을까? 아마도 어깨를 툭 치면서 말하지 않을까? "봤지? 내가 말했잖아. See? I told you."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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