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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능선'의 사회학 "아버지 술에는 눈물이 반이다"

[LA중앙일보] 발행 2018/11/05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11/04 18:22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서. 기쁜 자리에도, 슬픈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때론 아름답고, 때론 추하다. 고기에도, 회에도, 라면에도, 새우깡에도,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린다. '국민의 술', 소주다. 두 달 남은, 앞으로의 시즌은 소주가 주인공이다. 적어도 잘나가는 조연은 된다. 우리는 경험상 안다. 이런저런 연말 송년모임에서 푸른 색 병에 담긴 하얀 소주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 것이다. 우리를 뜨겁게 하는 소주에 대해 알아본다.

소주에는 미추(美醜)의 경계선이 있다. 눈에 안 보이는 그 선은 소주 잔을 드는 사람의 마음에 그어져 있다. 의외로 뚜렷하다.

소주잔 '능선'은 세대에 따라 술을 잔에 따르는 양을 말한다. 자그마한 그 잔 속에 세대 차이는 엄격하다.

60 중반을 넘어선 세대, 70대는 소주잔을 꽉꽉 채운다. 받는 잔도 꽉 차야 한다. 꽉 눌러 채우지 않으면 예의 없거나 무성의하다고 여긴다. 흘릴 듯 말듯 찰랑찰랑 잔을 따라 올리는 것은 거의 묘기다. 다년간 술을 친구로 삼지 않았으면 못한다. 넘치거나 한참 모자라 실례를 범할 뿐이다.

50대를 포함한 중장년 세대는 8.5부 능선이다. 이것 또한 술 따르는 것이 묘기다. 어떻게 그만큼(1.5부)만 남기고 따르겠는가. 애주가나 술꾼만이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해 그 높이를 정확하게 맞출 뿐이다.

더 어린 요즘 젊은 세대 절반이 살짝 넘는 5.5부나 6부 능선이다. 그 선을 넘으면 눈썹이 가운데로 몰린다. "아~ 이 꼰대!"라고 하는 마음속 말이 보인다.

각 세대들이 원하는 '소주 라인(line)'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 경계선은 상대방을 아름답게 취하게 하느냐, 술에 '꼴게' 하느냐의 절대 라인이다. 결국 그 라인은 아군과 적군을 가른다.

소주 라인이 세대별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왜일까.

소주잔 능선은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술이 차고 남은 공간은 바로 '나'다.

옛날 세대의 빈 공간 없는 꽉 찬 술잔은 "이 술자리에서 나를 지키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다 주겠다는 의미. 30~40년 전 술잔을 부딪치며, "죽자"를 외친 세대에게는 모두가 한뜻으로 먹고 마시고, '함께 살고, 동시에 몰살하자'는 이야기였다.

이에 반해 8부, 6부 능선의 중년, 젊은 세대는 "이 정도(20% 40%)는 나를 지키는 공간으로 여지를 두고 싶다"는 뜻이다. 다 받지도, 다 주지도 않겠다는 세태의 반영이다.

과거 세대가 저녁 자리에 유일한 낙과 소통이 술자리인 것에 비하면, 현대 사회는 할 일과 볼 일, 들을 일이 너무 많다. 술자리에서 잠시나마 허용됐던 상사·동료·회사의 험담은, 이제 24시간 컴퓨터를 통해 즉각 즉각 주고받는다. 술자리에 끼여야 각종 정보를 흘려듣던 일도 이제는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로 바로 입수할 수 있다. 괜히 몸 버리고, 윗사람 의중 맞추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사회의 풍속화를 그린다면 '소주·삼겹살·연탄불'이 3대 요소였다.

소주는 힘든 현실의 고뇌를 '값싸게' 잊게 했다. 삼겹살은 힘든 현실의 희망을 '값싸게' 보충해 줬다. 연탄불의 오렌지빛은 차가운 경쟁사회를 '값싸게'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것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은 서민적이라는 이유다. '값싸다'는 것은 단순히 주머니 사정만 고려한 것이 아니다. 마주앉은 사람과의 편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기애 중심'의 세태 앞에 소주잔의 능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음주…'LA 스타일'

LA에서는 지난 1998년, 소주가 비어 & 와인으로 분류돼 판매가 자유로워 졌다. 그 이전에는 소주를 못 마셨다. 아니 없었다. 한국을 방문을 하고 오는 사람이 '팩 소주'를 챙겨오면 나눠 마시는 게 다였다. 술집에서는 보통 맥주나 사케를 마셨다. 주전자에 담아오는 찬 사케는 소주와 비슷했다.

LA는 소주의 '주도'가 묘한 곳이다. 술자리가 차면, 주거니받거니 술을 건넨다. 여기까지는 똑같다.

그런데 30여 분이 지나면, 자기가 혼자 따라 마시기도 한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뭐라고 타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면 난리가 난다. 예의 없다고 여긴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신을 무시한다고까지 생각한다.

'LA 스타일'은 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두 손을 올리고 내리며 술을 주고받는 것이 '번거롭다'고 여겨져 은근 슬쩍 자기 술은 자기가 따라 마신다. 주위 사람은 그걸 별생각 없이 용납한다. 거의 대부분은 '상대방이 귀찮아 할 거 같아서' 자작을 한다. 나름 배려인 셈이다.

최근에는 매우 진보적인(합리적인)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각자 한 병씩 따로' 마시는 거다. 안주를 가운데 놓고, 저마다 앞자리에 자기 소주를 따로 놓고 마신다. 이 경우 본인이 얼만큼 마셨는지 바로 확인이 된다. 본래 술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갱단 술'이다. 여러 사람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신이 얼만큼 마셨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돼 실수로 이어진다.

◆LA서는 서민주 아니다

LA에서 소주는 '서민주가 아니다'.

한국에서 3, 4000원 하는 것이 여기서는 10달러가 넘는다. 12달러 하는 곳도 있다. 염가 세일하는 곳도 6달러는 한다.

결국 두 명이서 안주 한두 개 놓고 소주 3병을 하면, 팁 포함해 7~80달러. 결코 싸지 않다.

수년 전부터 술자리가 복잡해졌다.

예전 같으면 “여기 소주요” 한마디로 끝날 주문이 요즘엔 브랜드 이름까지 일일이 대야 한다. 인기주인 ‘소맥’을 시키려면 소주는 이것, 맥주는 저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귀찮다. 복잡한 머리를 쉬자고 왔는데, 또 선택을 들이대는 것이다. 선택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자유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선택할 것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여긴다.

과연 그런가.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 조건이 주어진 현대인은 오히려 우울하다. 선택이 불안과 걱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해 왔던’ 것을 그냥 그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

많은 선택 항목은 자유를 제한하곤 한다.

◆도수…30~17까지

1965년 30도짜리 희석식 소주가 첫선을 보인 후 73년 25도짜리가 나와 근 25년 동안 줄곧 대중 술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99년 23도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급강하 하더니, 2006년엔 20도, 2014년에는 17도대로까지 떨어졌다.

대중 술이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곳은 한국소주시장이 유일하다. 알코올 도수 1도를 내리는 데는 소주업체의 표현대로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 기호품은 극히 미세한 맛과 향의 차이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안위를 점검한다. 25도에 길든 술꾼들로부터 "싱겁다"는 말이 번지면 순식간에 거덜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왜 내리는 걸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여성 소주인구 증가'를 첫 번째로 꼽고 있다.

25도 시절 데이트중인 두 남녀가 술집에서 마시는 소주 양은 한 병이 고작이었다. 여성들은 술잔을 좀처럼 입에 대려들지 않았다. 독해서다. 그러나 도수가 내려가자 판매량이 확 달라졌다. '25도짜리 2홉들이 한 병이 정량'으로 길들여진 남성 애주가들은 '순한 소주' 한 병으로 끝내기엔 어쩐지 부족해 한 병을 더 시키고, 여성 파트너는 한결 순해진 소주를 함께 마시는 새 풍속도가 생겨났다. 요즘엔 여성이 낀 술자리에서 술과 안주의 '주문 권한'은 주로 여성에 있다. 소주 광고는 99년 이영애를 시작으로 모두 여자다.

◆잘못된 술 상식 3가지

"술 먹기 전에 숙취 해소 음료를 챙겨라?"

-시중에 나도는 숙취 해소 음료는 숙취 예방 효능을 명확하게 검증받은 건 없다는 게 의학계의 설명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은 이들에게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선전하는 만큼의 효과는 누릴 수 없다는 것. 차라리 술 마시기 1시간 전쯤 죽을 한 그릇 먹는 게 몸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단다.

"커피를 마시면 술이 깬다?"

-간이 분해할 수 있는 알코올은 1시간에 15g 정도밖에 안 된다. 소주 한잔 남짓인 셈이다. 게다가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은 간을 피곤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간이 피곤하니 알코올 분해가 빨라질 리 없다. 급하게 술을 깨야 한다면 차라리 녹차를 마시는 게 좋다.

"야채를 넣으면 술이 약해진다?"

-술에 레몬이나 오이를 넣어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뒤끝'이 좋다는 게 이유. 그러나 의학적으로 볼 때 이런 행동은 무의미하다. 이런다고 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채의 신선한 향으로 술의 냄새를 뒤덮어 주는 바람에 오히려 과음을 유도할 수도 있다.

◆소주…어떻게 만드나

술은 크게 발효주냐 증류주냐로 나뉜다. 이를 근거로 세율과 판매방식을 정해 관리·통제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는 간단하다. 원료가 보리일 경우 발효시키면 맥주가 되고, 맥주를 증류시키면 위스키가 된다. 마찬가지로 포도를 발효시키면 와인이 되고, 와인을 증류시키면 브랜디가 된다. 한국의 경우 쌀(발효)→막걸리(증류)→소주, 중국의 경우 수수(발효)→홍주(증류)→고량주가 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발효주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지만 증류주에 대해선 단호하다. 우선 원료가 많이 소모된다. 쌀이든 보리든 곡물은 인간에게 주식이다. 생존 필수품이지만, 공기나 물과 달리 생산에 한계가 있다. 이 생필품을 즐기기 위한 '기호품'으로 바꿔먹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주세의 근본취지다.

소주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뉜다.

증류식은 양조주에 물을 섞어 열을 가해 한 번만 증류시켜 만든 술이다. 50도 내외다. 안동소주 등이 대표적이다. 고려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소주는 모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양조주를 한 차례 증류시킨 증류식 소주였다.

희석식은 양조주를 여러 차례 가열해 여기서 나온 고농도의 에틸알코올에 물과 첨가제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소주다. 소주병에 표시된 희석식 소주(稀釋式燒酎)의 주(酎)자는 '세 번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세 번 이상 증류한 뒤, 희석시킨 술이라는 것이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은 쌀을 원료로 소주를 빚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시켰다. 대신 태국·말레이지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절간(잘라서 말린) 고구마 등을 헐값에 배로 들여와 소주를 생산토록 지시했다. 형편없는 품질이지만 그 안의 녹말성분을 이용 99.9%짜리 에틸알코올을 추출해낸 후 물을 타 알코올도수를 희석시키고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것이 희석식 소주의 기원(65년)이다. 나름 기발한 착상이었다.

이 술로 저임금 과노동의 도시 근로자들을 달래가며 경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 싸게 더 넓게 공급했다. 위스키엔 200%의 주세율을, 맥주에는 150%의 높은 세율을 매겼고, 희석식 소주에는 35%만 매겼다. 잣대를 '발효↔증류'가 아닌 '부자↔빈자'로 들이댔다.

1991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제 1회 세계주류박람회가 열리자 (주)진로측 임원 한 명이 자사의 '진로소주' 출품을 문의했다. 그러나 "진로소주는 술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출품을 거절당했다. 발효 또는 증류과정을 거치면서 원료의 향과 맛이 살아있지 않은 단순 에틸알코올은 박람회장에 진열될 자격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쌀개방을 하면서 남아도는 쌀을 처리하기 위해 진짜 쌀 소주를 만들 것을 업체들에게 지시했다. 제대로 빚은 고급 소주들이 앞다퉈 출시됐다. 그러나 전혀 팔리지가 않아 금세 자취를 감춰버렸다. 애주가들의 입맛은 이미 희석식 소주에 길들여진 것이다. 게다가 희석식 소주는 싼 가격과 보관이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에 소비가 계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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