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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김 할아버지의 애달픈 사연

4월에 게재된 기사를 보고 전화했다는 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이 무척이나 빠져 있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요, 정말."

뉴저지에 사는 노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 할아버지는 올해 78세. 매달 혼자받는 1500달러의 소셜연금이 생활비의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복병'은 예고가 없다고 했던가. "지난달 사회보장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소셜연금에서 매월 654달러를 제하고 주겠다는 거에요. 확인해보니 딸 아이 학자금 융자액이 1만 달러 남아있었는데, 결국 연금 차압이 들어온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죠?"

김 할아버지가 본 기사의 내용은 일부 자격을 가진 학자금 계좌 소유자가 10년 이상 교직, 국방관련 직업, 공무원으로 종사할 경우 남은 액수를 탕감해준다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김 할아버지의 상황은 탕감 대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생활비의 절반이 날아가게 된 셈이다.

적잖은 이자가 붙는 학자금(현재 이자율 7%)은 액수에 따라 상환이 10~20년이 걸리며 때로는 연체 상태를 거쳐 민간 콜렉션 회사에게까지 넘어간다. 재무부의 이런 집요한 조치는 모두 합법이며, '엉클 샘(Uncle Sam)'의 본성을 역력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남은 잔액을 민간 융자회사나 은행을 통해 재융자하거나, 다른 크레딧을 동원해 일시불로 갚고 추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을 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딸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마흔이 넘은 딸이 아버지의 소셜연금에 붙은 차압을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선을 넘는 것같아 묻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와 30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내려놓은 수화기가 마음을 눌렀다.

우리 모두에게는 가족만의 스토리가 있다.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거나, 누군가에게도 이해시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말이다. 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때론 그 인연을 끊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며, 인생 최대의 상처를 남겨주기도 한다. 자본주의에 살아남지 못하고 가족에게도 '포기된' 홈리스들이 이렇게나 많은 미국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 비교적 노숙자가 적은 것은 가족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노숙자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1만1000명을 넘어섰고, 무연고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첨단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을 갖춘 사회가 됐지만 그 안의 인간은 스스로 가족과 형제, 부모를 포기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싫은 우울한 뉴스다.

영국 출신 물리학도로 욕심을 버리기 위해 태국에서 '출가'를 택한 아잔 브라흐마는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욕심과 소망은 모든 걱정과 갈등의 출발"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가족에게 상처받고 실망하는 이유가 '욕심과 기대' 탓일 수는 있지만, 최소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할 대상도 역시 가족이 아닐까. 비록 포탄 속에 낙동강을 건너거나, 혹한의 기아 속에 허덕이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냉혹한 요즘의 현실에서 붙들고 나갈 것은 가족일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항상 우리를 돌보고 지키는 가족이다. 그러나 우리 중 일부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가족들을 버리거나 배신하거나 소홀히 대한다. 우리 모두 김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새해에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더 살피겠다는, 작지만 거대한 목표를 작심 리스트 1번으로 올려보면 어떨까.


최인성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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