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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탈북'…고향찾다 눈감는 그들

탈북 1세대들 잇따라 부고
'제3국-한국-이민' 고된 삶
굴곡진 한반도 역사 증인들

1992년 먼저 탈북한 박명남씨가 브로커를 고용해 2001년 어머니 전흥순씨 남한으로 모셔온 직후 찍은 가족사진. [박명남씨 제공]

1992년 먼저 탈북한 박명남씨가 브로커를 고용해 2001년 어머니 전흥순씨 남한으로 모셔온 직후 찍은 가족사진. [박명남씨 제공]

청소년기 영양결핍 시달려
체류신분탓 치료 잘 못받아
동지회 "도울 형편못돼 죄송"



25일 저녁 사이프리스 주님의빛교회에서는 조촐한 장례식이 열렸다. 어머니 전흥순(90)씨를 떠나보내야 하는 탈북동포 1세대 박명남(50대)씨는 힘없이 말했다. "살아계실 때는 짜증도 냈는데…이렇게 돌아가시니 가슴 하나가 뻥 뚫린 것 같네요. 미국 땅에서 제가 외로울 때 늘 같이 계셨어요."

박명남씨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진 1년 전부터 사이프리스 한 양로병원에서 머물렀다. 지난해 마지막날 갑자기 혈압이 높아지고 맥박이 빨라져 병원응급실을 찾았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노년에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난 것 같다며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1929년생인 고 전흥순씨는 경기도 수원이 고향이다. 한국전쟁 전 시집을 갔다. 전쟁이 벌어지자 남편을 따라 시댁 평양으로 피신했다. 그렇게 전씨는 분단 후 2001년까지 북한에서 살아야 했다.

1992년 남한으로 귀순한 박명남씨는 2001년 브로커를 고용해 어머니 전흥순씨 탈북을 도왔다. 어머니 전씨는 남한 고향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2003년 아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자 외로움을 못 이겨 2007년 미국까지 따라왔다. 한평생 '남한-북한-남한-미국'을 오간 전씨,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북한에서 남편과 사별했다. 북에 남은 자녀와 미국의 아들·손주를 걱정하다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굴곡진 한반도 역사를 엿보게 한다.

"북한 평양에서 좀 살던 집 안주인은 아들이 탈북하자 고생이 시작됐죠. 하루아침에 박살이 난 거예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릴 적 고향 수원 이야기, 전쟁 때 돌아가신 외삼촌만 찾으셨어요. 그래도 손자가 미국 대학 풋볼장학생이 된 것을 기뻐하셔서 다행입니다."

1990~2000년대 더 나은 삶을 위해 탈북한 1세대들이 미국에서 숨을 거두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기 영양실조를 겪고, 중장년이 된 지금 제대로 된 건강검진과 치료를 하지 못해 의료사각지대에 놓였다. 특히 탈북 후 남한 귀순, 미국 이민이란 떠돌이 삶을 '죽음'으로 접할 때 먹먹한 심정을 토로했다. 미주탈북동지회 김창호 회장은 "미국으로 온 탈북 1세대가 한 분, 두 분 돌아가신다. 소식을 들으면 참 가슴 아픈데 우리도 도움을 드릴 형편이 아니라 더 쓰리다"고 말했다.

미주탈북동지회에 따르면 남가주 탈북동포는 50~100명으로 추산한다. 대부분 망명 신청을 하지만 노동허가만 연장할 뿐 체류신분 해결이 쉽지 않다. '지압사, 식당 종업원, 택시기사, 일용직'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일부는 미국 생활 적응에 실패해 남한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을 택한다.

"(탈북한 뒤)한국 생활이 만만치가 않아요. 그래도 미국은 부지런하면 먹고살 일거리는 있거든요. 박명남씨처럼 어머니까지 모셔온 분은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탈북 1세대가 50~60대가 되니 다들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김창호 회장 말처럼 탈북 1세대는 청소년기 영양결핍에 시달렸고, 중년이 돼 변변한 건강검진이나 치료도 못 받고 있다. 50대 전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는 이유기도 하다. 탈북 1세대로 LA에 식당을 개업했던 김모(당시 51)씨도 2016년 간암으로 단명했다. 당시 탈북 동포에게 희망의 등불 같은 존재였던 만큼 주변이 느낀 충격도 컸다.

김 회장은 "다들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잘 모이지 못하지만 스트레스를 제때 풀고 건강관리에 유념하길 바란다. 미국에서 세상을 뜨신 (탈북동포)분들 참 고생 많으셨고 유가족 힘내시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재개에 나서며 북미 이산가족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산가족은 2005~2007년 총 7차례, 3748명이 영상통화로 떨어진 가족을 만났다. 현재 이산가족 화상상봉 재개 사업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이렇다할 진전은 없는 상태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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