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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김은자 / 시인

나무가 잎을 다 떨구어내 맨몸이 드러나는 이 무렵이면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온다. 이상한 일이다. 파릇파릇한 봄을 놔두고 꽃과 잎이 즐비한 여름을 젖혀두고 희망 없는 11월에 추수감사절이 있다는 것은. 신의 언어는 이 순간도 역설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그 모순과 배반의 극치가 나에게는 추수감사절이다.

나는 이 글이 지극히 종교적이거나 인문적이 아니기를 바란다. 종교를 가진 분에게나 갖지 않은 분들,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이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이다. 왜 추수감사절은 11월에 있는 것일까? 한 편의 시가 생각난다.



아침에 나와 하루 일할 곳 있어/ 두 발로 혼자 걸어 나올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어/ 밥을 내 손으로 먹을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남 이야기 듣고 내 이야기 줄 수 있어/ 어디든 보며 갈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들어 살 수 있는 허름한 집 한 채 있어/ 그 안에 의지하며 사는 가족이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진정 미안합니다.// -조남명시인의 '미안합니다' 전문



이 시는 화려한 수사와 시적 묘사가 있는 시는 아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이 시가 나의 가슴을 때린다. 미안하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은 동의어라고 시인은 말한다.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낱말이라고. 위로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 옆으로는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십자가의 의미라고.

추수감사절은 수직관계만을 의미하는 날은 아니다. 신은 수평관계를 무시한 수직관계를 슬퍼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와 덩그마니 혼자 서 있는 당신을 신은 아파한다. 씨를 뿌리기 전 밭을 갈아야 하는 것처럼 신에게 감사를 돌리기 전 해야 할 일은 '미안하다'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웃들을 돌아보고 화해하는 날이 추수감사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은 17세기 초반 영국 국교회와의 갈등으로 미국의 플리머스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그 해의 풍년을 신께 감사하기 위해 3일동안 감사축제를 연 것에서 비롯되었다. 청교도들은 그때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어 굶어 죽지 않도록 배려한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추수한 곡식과 과일 그리고 야생 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축제를 즐겼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이다.

수직관계와 수평관계가 함께 어우러져 감사하는 날이 추수감사절이다. 감사는 사랑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감사는 미안한 마음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 없이 사랑은 꽃 피우지 못한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러나 우리는 미안해야 한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기에 걸을 수 없는 자에게, 한밤중 삼나무 가지 위를 하얗게 내리는 눈과 고요를 멀쩡한 두 눈으로 볼 수 있기에 볼 수 없는 자에게, 허름하지만 쉴 집이 있기에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미안해야 한다.

연애의 기본은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미안한 마음으로 이웃과 화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과 열애하고, 사랑으로 훈훈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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