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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불치병만 고칩니다

조모세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수상자

어느 병원 앞에 “불치병만 고칩니다” 라는 간판이 걸렸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신경 안 쓰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불치병을 치료 받고 즐겁게 살아갔다.

인간의 불치병 가운데 그 으뜸은 아마 “죄” 라는 병일 것이다. 사람들은 환경이 나빠서, 혹은 성질이 더러워서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만일 환경이 나빠서 죄를 짓는 것이라면 그 사람을 무인도에 살게하면 죄를 안 지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여러가지 이유로 불평과 함께 죄가 흘러나오게 된다. 또한 성질이 나빠서 죄를 짓는 것이라면 성질이 좋은 성인군자는 죄를 안 지어야 한다. 그러나 성인군자도 참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경은 죄를 언급할 때 단수 “죄” 와 복수 “죄들” 로 구분한다. 성경에서 죄는 사람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가리키고 죄들은 밖에 있는 행위들을 가리킨다.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사람은 불순종 하여 그 과실을 먹었다. 선악과는 죄의 본성을 가진 마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죄는 사람 안에 들어와서 사람은 죄의 본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죄들을 짓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환경이 나쁘거나 성질이 나빠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죄의 본성이 이미 안에 있기 때문에 죄들을 짓는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순진한 어린 아이들 안에도 이미 죄의 본성이 있어서 따로 과외하지 않아도 스스로 죄를 배워서 죄들을 짓는다. 따라서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은 죄공장 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밖에 있는 죄들은 이 공장의 제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공장이 가동될 때마다 여러가지 새로운 죄들이 끊임없이 생산된다. 가정교육, 윤리와 도덕, 또는 각종 종교로 아무리 죄를 억눌러도 결국 이 공장이 가동되면 저절로 죄가 생산된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이, 새가 하늘을 날 듯이 자연스럽다. 물고기에게는 물에 사는 본성이 있고 새는 하늘을 날으는 본성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죄의 본성이 있다. 그러므로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에게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괴로운 일이다. 죄인은 죄를 짓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왠일인지 몰라도 주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이 죄들을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 분의 보혈은 죄인들을 위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죄인들은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

또 하나의 불치병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 이라는 병이다. 인류 역사상 아무도 이 병을 이기지 못했다.수 많은 성인군자들, 종교 지도자들, 이집트의 파라오, 모든 권력자들, 진시황과 불로초를 구하러 간 사람이 다 죽었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죄는 원인이고 죽음은 결과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 밖에 있는 죄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 받았으나 안에 있는 죄공장은 어떡할 것인가? 만일 안에 있는 죄공장이 없어지지 않으면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주님은 지혜롭게도, 사람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단번에 없애지 않으셨다. 그 대신 우리의 생명의 성장과 훈련을 위해서 주님은 죄의 본성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넣어주셨다. 이 생명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런 생활 또한 새가 하늘을 날 듯이,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이 자연스러워야 정상이다. 물론 지금은 우리의 생명이 성장하는 중이고 훈련 중이기 때문에 실패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거룩한 생활에 도달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의로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 있다 (롬 8:1-4 ). 이 거룩한 생명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을 보는 것은 이 땅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다 (골 3:4). 거듭난 사람 안에 넣어주신 거룩한 생명을 찬양하자!!!

조모세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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