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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이 목사의 꿈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노스 센트럴(North Central)', 필라델피아 도심에 위치한 이곳은 버려진 곳이다. 주인 없이 비어있는 집이 절반 가까이 되고, 주민의 대부분이 절대 빈곤층이다. 고등학교까지 마친 사람이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교육 수준도 낮다. 마약과 강도 살인 사건이 하루에 몇 건씩 벌어지고, 밤낮을 불문하고 경찰을 마주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며, 헬기가 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보고 배울 롤모델도 없다. 인근에 위치한 템플대학교는 학생들에게 이 지역 출입을 경고할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난 주말 지인의 초청으로 연말 행사에 다녀왔다.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나누는 캐주얼한 자리였다. 근사하게 편곡된 크리스마스 캐럴을 포함한 쉽고 익숙한 몇 곡을 준비해 식사 전 20여분 동안 연주하는 계획이었다.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5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준비 요원들이 통일된 복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00명 식사를 위한 테이블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행사용 음향장비와 DJ도 투입됐다. 13명이 연주하기에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자리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공연팀이라는 괜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노스 센트럴에 제 발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주민의 95%가 흑인들이니 겉모습만으로도 군계일학이다. 이태후 목사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됐다. 그 후 몇 년 간 다른 사역자들과 비슷한 길을 가던 그가 노스 센트럴로 들어간 지 내년이면 15년이 된다. 이 목사가 하는 일은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주기도 하고 장례를 돕기도 한다. 함께 먹고 마시고 놀면서 그들 삶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네 ATM에서 권총 강도를 만나 죽을뻔 한 일도 있었고, 이 목사의 옆집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방송을 통해 크게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마약과 일탈의 유혹 말고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참석자들을 환영하며 행사가 시작됐다. 곧이어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청중들을 향해 인사 한 후 연주를 시작하려는데 관객들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수습되지 않았다. 어린 자녀들을 동반한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시 청중들 쪽으로 몸을 돌려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는 시늉으로 조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연주는 시작되었지만 장내는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연주를 멈춰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어수선해졌다. 보다 못한 진행자는 네 번째 곡이 연주되기 직전 다시 마이크를 들고 청중들을 향해 정숙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감상해 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조용히 듣는 것이 연주자를 향한 청중들의 예의라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덧붙였다.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유쾌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누군가 우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붙들고 연주를 끝마쳤다. 이런 번잡스러운 분위기에서 연주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연주 후 이태후 목사는 바이올린이 어떻게 생기고, 첼로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지휘자는 어떻게 팔을 흔드는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청되어 온 아이들의 대부분은 생전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접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힙합이 음악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첫 번째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큰 울림이 전해왔다.

이태후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클래식 음악과 관련 인문지식에 관한 그의 내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스 센트럴 주민들과 아이들을 이웃 삼아 살아가는 그가 빵과 성경이 아닌 또 하나의 선물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여름, 12월에 필라델피아로 내려와 연주해 줄 수 있겠느냐는 그의 이야기를 다시 복기해 보았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전해주고 싶어하는 그의 또 다른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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