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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일대일의 소통'만이 해낼 수 있는 것

정여울 / 작가

이 일을 해내면, 이 장애물만 뛰어넘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을 뛰어넘기가 싫다. 왠지 거부하고 싶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길 위에서 뛰어넘어야 할 최고 난도의 관문. 그것은 바로 내 슬픔의 뿌리를 직시하는 것이다. 때로는 타인에게 내 아픔의 뿌리를 털어놓고 그 치유의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는 작업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런데 아픔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치료를 할 때 환자들이 일부러 약속시간을 안 지킨다든지, 괜스레 상담실의 인테리어나 오는 길의 교통체증을 문제 삼는다든지,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줄 의지가 있는 사람의 조언을 매몰차게 거부하는 것이 바로 '저항(resistance)'이다. 저항을 하는 동안 잠깐 나의 자존심은 지킬 수는 있지만 이러한 저항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스스로 말살하는 것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변화해야만 가능한 치유를 스스로 거부하는 '저항'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의 맹렬한 저항에 부닥친다. 자신의 아픔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동안 단지 슬픔만이 마음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치유할 힘' 또한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게 된다. 그런데 슬픔을 표현하는 일에는 강한 수치심이 동반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과정을 두려워한다. 나는 철저한 일대일 멘토링을 통해 이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글쓰기 수업의 진정한 묘미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어떤 학생은 문장은 매우 훌륭한데 자신의 슬픔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선 전혀 힌트를 주지 않아 공허한 글쓰기를 계속한다.

'학생은 분명히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기 마음을 보여주지 않기에 안타깝다'고 이야기하니 '굳이 표현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면서 딴청을 피운다. '저항'의 전형적인 사례다. 사실 그 모습마저도 귀엽다. 예전 같았으면 '이 아이는 왜 이토록 시니컬할까'라고 걱정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아이도 침묵이나 생략의 방식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반기를 듦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만 실은 자신도 모르게 '내 아픔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다'는 닫힌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대일 멘토링을 하다 보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변화한다.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아픔이 현미경으로 생생하게 확대돼 보이기 시작한다. 효율적인 교육이 아니라 진심 어린 소통을 추구하자 겨우 두 달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글쓰기가 싫어 펜대만 하염없이 굴리며 지루해하던 아이가 자신의 고양이를 잃어버린 슬픔에 대한 뭉클한 글을 써서 나를 감동시켰고, 글쓰기에 좀처럼 관심이 없던 아이가 할아버지의 죽음 직전 자신과 마지막으로 나눈 통화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나를 울리고 학생도 울었다. "아가, 할애비가 세상에서 젤로 사랑하는 건 우리 손녀인 거 알제? 인자 내가 없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그래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학생의 어깨를 말 없이 안아주며 나는 깨달았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글쓰기의 전략이 아니라 아픔을 털어놓을 사람임을. 아이들은 단지 글쓰기 선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마음을 다해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대일 소통을 통해 누구보다도 내가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친밀성의 힘은 이렇듯 수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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