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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복고와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코드

상품 하나에도 스토리텔링이 스미는 복고의 매력
느리고 불편하지만 향수와 감성 선사하는 아날로그

얼마 전 유명 의류매장을 지나다 흠칫 놀랐다. 가장 중앙에 전시된 모델의 옷이 다름 아닌 완전 '복고'였다. 밑단을 접어 올린 통 넓은 디스코풍의 청바지에 올드한 느낌의 셔츠 그리고 짧게 맨 스카프까지 영락없는 영화 '써니'의 패션이었다. 복고의 열풍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 온 문화 트렌드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차용 정도가 아니라 노골적인 복고 모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도 이젠 익숙하다. 음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큰 개성 없이 훅 지나가는 요즘 노래들보다 곡의 흐름이 기억 속에 콕콕 박히는 예전 노래들의 깊이가 오히려 감성을 적신다. LA의 삶은 특히 더하다. 일상 생활은 세련된 방식을 선호해도, 감성을 압도하는 코드는 여전히 몇십 년 전 이 땅에 발을 디딘 그때 그대로다. 새롭게 재해석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복고 영화나 노래 혹은 상품들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단순한 사회 현상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향수로 점철된 타향의 삶이기 때문이다.

복고풍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

트렌드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울함 그리고 갈수록 더해지는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을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위로받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복고가 주목받는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적 감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추억과 만나면서 기꺼이 지갑을 연다. 복고풍의 문화 상품은 영화, 음악, 여행, 패션, 식음료 등 전 산업분야에 확산될 여지가 충분하다.



건국대학교 범상규 교수는 "히스토리에 대한 소비, 즉 복고풍은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문화적 행위이므로 한 순간 머물고 가는 단발적인 콘텐츠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또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고 복고 열풍을 진단했다.

디지털의 범람으로 인한 '편리함'의 생활은 오히려 '불편한' 아날로그적 생활을 찾게 한다. 아날로그는 향수이자 감성을 전달하는 매체다. 현란한 전자 음악 대신에 통기타의 인기가 살아나고, 그 예전 시대의 음악과 문화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 한정적이라도 실현에 옮긴다. 유명 가수의 LP 특별한정판이 고가에도 단 하루 만에 매진되기도 하고 수동형의 아날로그 상품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개성 강한 복고의 특징

요즘 복고의 특색은 과거를 세련되게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국제시장'과 60~70년대를 추억하는 '쎄시봉', 최근 개봉한 고전 '신데렐라'까지 과거를 실감나게 재현했지만, 표현이 세련되고 내용 면에서도 시대를 바라보는 감성에 새로운 해석력을 부여했다. 가요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인기 가요를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새롭게 리메이크함으로써 세대의 벽까지 허물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패션계에서는 편안함을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가 '놈코어'란 코드로 캐주얼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바짓단이 펄럭거릴 정도로 통이 넓고 발목이 드러나는 껑충한 길이의 와이드 팬츠가 매장마다 즐비하다. 윗옷과 바지를 모두 블루진 소재로 입는 청청패션도 유행이다. 가방도 실용적인 아이템만 쏙 넣는 미니백이 다시 돌아왔다. 다소 단조로웠던 예전 스타일에 비해 독특한 소재와 장식을 활용한 디자인들이 눈길을 끈다. 신발도 역시 복고의 물결. 추억의 통 굽과 반짝거리는 소재를 붙인 스니커즈가 대거 선을 보인다. 전혀 촌스럽지 않은 색상과 디자인으로 복고 패션에 새로운 멋을 불어 넣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호피 무늬의 선글라스나 눈꼬리가 올라간 캣 아이 선글라스는 70년대 해변을 연상시키는 복고 스타일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아날로그 적 복고 취향

어른들의 장난감 놀이도 부쩍 인기다. '키덜트'라 불리는 성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자 조립 장난감에 심취한다. 예전의 키덜트 문화는 미성숙한 비주류 문화로 치부됐지만, 요즘은 순수와 대중예술 전반에 걸쳐 주류 문화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키덜트가 집착하는 탱크, 항공모함, 전투기 등 실물을 축소한 플라스틱 모델은 아이들의 것과 다르게 색도 입히고 부품도 직접 만들어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그 모델 중에는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의 로보트들도 각광받는 아이템이다.

이민자들이 흔히 찾는 '아이키아(IKEA)'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불편함'으로 전세계를 장악한 글로벌 가구 공룡이라는 분석이다. 세련된 북유럽풍의 제품을 싼값에 구입하는 대신 직접 고르고 운반하고 조립하는 수고를 겪어야 하지만, 고객들은 기꺼이 번거로움마저 달콤하게 받아들인다. 아이키아 가구를 일컬어 성인용 '레고'라거나 이 매장을 스웨덴식 '디즈니랜드'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날로그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심리를 제대로 활용한 마케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복고 콘텐츠와 아날로그는 미래를 향해 있고, 메마른 정서에 '꿈'이라는 단비를 내린다. 뭔가 덜 세련되고 느리고 불편한 것 같지만 깊은 감성으로 더 강한 생존 본능을 일깨우는 트렌드다.

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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