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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김광석을 추억함

3초다. 이효리가 남자를 꾈 때 '저스트 텐 미닛(2003년 대표곡)'이 필요하지만 그의 노래는 3초만 들어도 눈시울이 시큰하다. 때로는 '엄마 이야기'보다 강력하다.

누가 그를 나에게 처음 소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스치듯 스미듯 알아갔다. 확실히 추억하는 건 친구들과 대학 시절 군입대하는 선후배들에게 송별회날 이 노래를 함께 불러줬다는 거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그렇다. 그는 국민가수임에도 그저 가객이라는 수식어만 남기고 요절한 김광석이다. 나는 주장한다. 세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가수는, 그였노라고.

그는 나에게 문명이자 비문명이다. 우물거리며 부는 하모니카 소리는 광야에서 부는 허무의 소리다. 초원의 혼이다. 포크 기타 소리는 잠을 깨우는 문명의 소리이자 개척의 소리다. 그는 이 두 공간을 넘나들며 연주한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멀어져간다" 그의 노래는 애절하지만 절규하지 않다. 슬퍼하지만 곧 인정하고 차분해진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후회, 나약한 인간이기에 밀려오는 그것은 그것대로 남겨둔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만추'에서 애나(탕웨이)가 옛사랑을 잊으라는 주변 사람들 말에 "그냥 슬퍼하게 내버려두라고" 외치듯 말이다.

그의 노래는 오래된 미래다.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노래 '어는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무덤 자리 알아보는 등 굽은 노인이다. 벌써 자녀가 대학 입시도 치르고 군대도 갔다오고 장가를 앞두고 있다. 아직 애도 없지만 가슴이 저민다. 숨 쉬는 이 순간이 벅차고 내일이 감사하다. 그는 나에게 모든 장르고 시다.

요즘 언론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MBC 출신 이상호 기자가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을 개봉하고부터다. 부인 서해숙씨도 장애가 있는 딸의 죽음을 방치한 의혹을 받고는 방송 뉴스에 직접 나와 해명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 LA에서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취재하기에 역부족이다. 지나친 음모론도 지양한다. 다만 김광석은 왜 그렇게 갔을까 의문한다. 이 모든 사태는 마치 김광석의 쓰다만 노래를 이어붙인 싱글앨범같다.

조금 잊고 지내자 했는데 LA에서도 김광석을 듣는다. 그와 함께 했던 골방의 이불 냄새, 부엌 싱크대 물 냄새, 좁은 창가로 힘겹게 들어오던 햇빛의 온도까지 만져진다.

혼자 노래에 심취해 아니 만취해, 아내에게 노래가 너무 좋지 않냐고 흥분해 물었다. 좋단다. "오빠가 하도 연애할 때 들어서 그때 생각이 나서 좋아"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김광석은 '누구의 김광석'인가보다.

꿈이 있다. 밴드를 만드는 것. 무대를 만들어 걸판지게 놀아보는 것이다. 샌타모니카 밤이 좋겠다. 은빛 머리 할머니가 치마폭 넓은 옷을 입고 플라맹고 춤을 추고 무명 가수들이 작은 마이크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며 음반을 파는 그곳 말이다. 지난밤 피어 높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관찰했다. 나도 노래하리라. 해질녘 샌타모니카 피어에서 기타를 치며 김광석을 부르리라.


황상호/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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