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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낯선 조국 '한국섬 표류기'


LA 생활 10년, 변방을 자처하던 한인사회 일원이 한국을 찾았다. 휴가 때 1~2주에 그쳤던 방문이 이번에는 100일이나 됐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고향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시골 구석까지 들어선 산업단지는 자연에 인공미를 가했고, 논바닥 가운데 고속철도를 지탱하는 끝없는 교각은 웅장했다.

'미국물'에 젖은 자의 조국 장기 방문은 호기심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낯선 조국 한국섬 표류기랄까. 추억 속 한국 사용법을 되살리며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기 충분했다.

조국 동포의 부지런함은 여전했다. 그들은 인천국제공항 도착 순간부터 게으른 자의 여유를 꼬집었다. 앞을 향해 나가려는 진취적인 발걸음은 빨랐고, 서로 몸을 부딪칠 때마다 암묵적 침묵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행여 조국 동포와 눈이 마주칠 때면 살며시 웃음을 지었지만, 그들은 무례함을 꾸짖듯 근엄한 표정을 잊지 않았다.

대도시부터 시골 읍내까지 도시 미학은 중구난방의 멋이다. '아파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란 찬미처럼 거대한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가 하늘을 찌를 태세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어선 아파트 숲은 자못 B급 문화인 키치(Kitsch)적 미학을 표현한다.



"너는 무슨 아파트에 사니? LH(임대아파트)랑은 같이 못 논다"라는 말은 유치원생부터 나누는 필수 담론이란다. 조국은 이미 자본주의 계층화와 브랜드네이밍을 위한 조기교육을 달성한 모습이다. "느네 아부지 차는 있니"라는 질문을 주고받았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새삼 조국의 발전상을 곱씹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란 명확한 구분 아래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한 모습도 신기했다. 회사 로고가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에게선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어떤 일을 하시느냐"라는 질문보다 "다니시는 회사가 어디냐"라는 질문이 우선인 조국은 확실히 애사심이 넘치는 곳이었다.

지옥과 조선이란 단어를 합친 '헬조선'이라는 풍자는 현실 왜곡이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도시 곳곳에서 사람을 불러모은다. 식당이며 술집이며 가는 곳마다 왁자지껄, 풍류민족이란 디엔에이(DNA)는 살아 움직였다. 가계부채 1400조(1조2572억 달러), 인구 30만 소도시 아파트 한 채도 3억 원(26만 달러)이란 무게는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지 못했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외침 속에 "미래보단 오늘을 살자!"라는 합창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기 바쁜 미주 한인사회가 배워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100일 동안 토종 한국인으로 복귀했던 일상이 깨질 찰나 동무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조국의 품에 들어오니 이곳이 참 살 만하구나" "다들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니 돌아오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번듯한 직장에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동무들은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을 아느냐. 팔자 좋은 소리 한다" "일 안 하고 돈 쓰러 온 놈이 환상에 젖었구나"라는 꾸짖음이 자못 진지하다. "되도록 돌아오지 말고 그곳에서 살아남아라"라는 벗들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김형재/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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