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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길잃은 벌새

내가 은퇴하기 전 아칸소 주도 리틀락에 살던 때니 한 20년 전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 차고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갑자기 머리 위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풍뎅이 날갯짓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돌려 보니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거 허밍버드(hummingbird) 아냐?” TV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본 기억이 났다.
우리 말로는 벌새라고 하고 열대 지방에 서식한다는 새가 우리 차고 안에서 붕붕 날갯짓하고 떠 있었다. 새 중에는 제일 작은 새라고 하고 바늘처럼 생긴 긴 주둥이를 꽃에 넣어 꽃꿀을 빨아먹고 산다는 새다. 초당 50여 번의 빠른 날갯짓으로 공중에 정지하여, 정지한 상태에서 꿀을 빨아 먹는 비행 기술로 유명한 바로 그 새가 아닌가. 날개 구조가 특이해서 헬리콥터처럼 전진, 후진, 수직 상승 및 강하, 공중체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새다. 이런 특출한 비행 기술 때문에 비행기 디자인의 참고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재간둥이가 우리 차고에 나타나다니.
아마 차고 문을 열 때 들어온 모양이다. 머리 부분은 까맣고 몸통은 옅은 잿빛이었다. 우리 집 주위에 큰 나무와 관목들이 많아 여러 가지 새를 보았지만, 벌새를 보기는 처음이다. “여보, 어서 내보내요” 질겁을 한 집사람이 집안으로 줄행랑을 치며 내뱉은 말이다. 나는 엉겁결에 차고 한구석에 놓여 있던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빗자루를 드니 새가 차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새를 따라가서 안쪽에서 밖으로 빗자루를 휘둘러대니 새는 다른 쪽으로 날아간다. 차 두 대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새를 따라 다닌다.
아마 녀석은 전혀 낯선 곳에서 내가 쫓아다니며 휘둘러대는 빗자루에 패닉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전에 차고에 새가 들어와 쫓아 내보낸 일도 있었지만, 이 녀석은 다른 새 같지 않게 한 지점에서 계속 날갯짓을 해대며 정지 비행을 하다가 내가 다가가면 위치를 옮긴다. 그런데 내 의도와는 반대로 번번이 안쪽으로만 날아든다.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휘두르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잠자리 잡을 때 쓰던 잠자리채가 아쉬웠다. 한참을 차고 안에서 녀석과 승강이를 하는데 집사람이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 보며 “걔가 왜 안 가겠대?” 하고 얼핏 문을 닫는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쫓고 쫓기는 차고 안에서의 소동은 계속되었다. 한 10여 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녀석을 쫓아다니느라 어지간히 지쳐 빗자루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거두기로 했다. “이를 어쩌지?”하고 있는데 별안간 날갯짓이 느려지는가 했더니 순간적으로 차고 바닥으로 수직으로 추락하는 것 아닌가. 이 갑작스럽고 전연 예상을 못 했던 일에 깜짝 놀라 들여다보니 꿈지럭거리는 것이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 수도 없는 계속된 날갯짓에 기력을 잃고 완전히 녹초가 된 모양이다. 내가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벌새가 빠른 날갯짓을 위해 새 중에서 상대적으로 최강의 가슴근육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곤경에 빠져서야 강철 날개인들 견뎠을까.
물론 이 쫓고 쫓기는 법석은 처음부터 녀석이 내 의도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긴 엄지손가락만한 야생 미물과의 의사소통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빗자루를 휘둘러 그를 쫓아내려고 했으니 위협을 느껴 죽자사자 피해 다니다가 생긴 일이다. 안타깝고 그에게 미안했다. 아직도 꿈지럭거리는 그를 차고 밖에 있는 나무 그늘 밑 잔디에 놓고 외출하기로 했다. 약 한 시간 뒤에 돌아와 보니 녀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없었다. “기운 차려 날아갔나 보지?” 집사람의 말에 건성으로 “응” 대답하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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