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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학동네] 싸이코 드라마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17 01:50

박보라 수필가<br>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박보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불이 꺼진다.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무대 한 가운데에만 조명이 켜진다. 거기엔 투박한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극을 연출하게 될 진행자가 무대 위로 오른다. 관객석을 둘러보니나를 뺀 모든 이가 환자복을 입고 있다.

평소 연극을 좋아해서 소극장을 많이 찾는 편이지만 싸이코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수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살짝 긴장이 되는지 허리가 곧게 뻗는다. 심지어 ‘싸이코’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 히치콕의 영화와 정신과 환자들 속에 앉아 있는 이 황당한 상황에 뒷머리가 찌르르하다.

진행자가 환자의 이름을 부른다.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오른다. 그녀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본다. 오늘은 엄마를 만나볼 거예요. 이미 진행자는 모든 걸 준비해 온 듯 엄마 역할을 할 배우를 무대에 세운다. 엄마는 언제 돌아가셨죠? 제가 아주 어렸을 때요. 그렇군요. 옆을 보세요. 여기 엄마가 와 계세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면 해도 괜찮아요. 그녀는 배우가 선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과제를 위해 나도 미리 그녀의 차트를 모두 훑어보고 왔다. 그녀는 어린 딸을 가진 조현병 환자였다. 그런데 자꾸 딸을 보면 분노가 인다고 했다. 특이점이라면 어릴 때 엄마를 잃었다는 것. 결국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문제인 건가. 엄마의 부재가 정신적 충격으로 이어져 육체와 정신의 병이 된 걸까. 그 이론이 맞는다면 그녀의 병은 모두 엄마 탓이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진행자가 배우에게 대사를 던져준다. 그걸 배우는 감정에 담아 다시 여자에게 전한다. 엄마 왔어. 너 엄마한테 할 말 있으면 다 해 봐. 엄마가 들어줄게. 그러자 여자가 천천히 입을 뗀다. 아직은 주변을 의식하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색하게 연기하는 신인 배우 같이. 엄마, 왜 그렇게 일찍 갔어? 진행자가 다시 배우에게 다음 대사를 던져준다. 미안해, 우리 딸.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 많이 아팠거든. 그 말을 듣자,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장내가 어찌나 조용한지 그녀의 숨소리가 확성기를 댄 듯 크게 퍼져나간다.

언젠가 몇몇 사람과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처음엔 과연 나를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느냐로 시작된 이야기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느냐 쪽으로 흘러갔다. 그 중 몇 가지 근거들은 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먼저 우린 누구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말 그대로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나를 봤다’고 하는 말에는 사실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내 눈을 빼서 직접 나를 보게 해 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은 과연 진짜가 맞는 걸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니다. 거울, 물, 유리를 통해 반사된 상을 봤을 수도 있고, 비교 대상을 통해 오랜 시간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대단한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던지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녀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가 엄마 없이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녀의 말 속엔 원망이 섞여 있다.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관객들의 눈동자가 모두 그녀의 입술에 모아진다. 이젠 역할을 바꿔 딸이 엄마로, 엄마가 딸로 분(分)해 극을 이끌어갈 차례다. 엄마 역할을 했던 배우는 그녀가 했던 말을 똑같이 전한다. 엄마, 왜 그렇게 일찍 갔어? 내가 엄마 없이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녀는 엄마가 되어 어른이 된 자신을 보고 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 진행자는 어떠한 말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녀 스스로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길 기다리고 있다.
배우가 더 격정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부추긴다. 엄마 없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아냐고! 배우의 목소리가 소극장에 쩌렁쩌렁 울린다. 그제야 그녀가 입을 연다. 미안, 정말 미안해. 우리 딸, 고생 많았지? 엄마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너무 아팠거든. 그래서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어. 엄만 그게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먹먹해져 간다.

제 입으로 전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팠는지 그녀의 큰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수십 년이 지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겨우 알게 된, 돌아가신 엄마의 진심. 실재하지 않는 엄마와 화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망에 갇혀 살던 자신을 몇 걸음 떨어져 나와 바라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던 걸까.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원망하다가 결국 자기 딸도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가 된 건 아닐는지. 다시 바뀐 역할.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있다. 진짜 엄마도 아닌 배우 앞에서 장내가 떠나가도록 소리 내어 운다. 그녀는 마치 엄마 영정 앞에 앉은 어린 아이와 같다. 그런 그녀를 오늘 하루 그녀의 엄마가 되어줬던 배우가 꼭 안아준다.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찍어 좌우를 바꿔본다. 그러면 정말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든다. 그냥 좌우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게 실제 내 모습과 더 가깝다. 거울을 볼 땐 좌우가 바뀐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내 얼굴이 동그래졌다가 뾰족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예쁘게 찍히면 저장하고, 마음에 안 들면 삭제해 버린다. 그건 자기가 원하는, 스스로 이렇다고 생각하는 자기 모습을 그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를 그려야 하는 자화상은 참 독특한 그림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의한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혹, 사람이나 환경이 준 상처에 반사되어 어그러져 있진 않은지. 아니면 과도한 자기애로 뭉쳐져 실제보다 더 높은 콧대를 그려 넣은 건 아닌지.

그녀의 자화상에 엑스표가 쳐진다. 그리고 새 캔버스를 꺼낸다. 새로 그려질 자화상에선 그녀가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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