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동부에서 서부로 이민 가기
엄살도 살살 아플 때 떨지 너무 아프면 말이 안 나온다. 죽을 만큼 괴로우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죽기살기로 버티며 살고 싶어한다. COVID-19 감염 전파로 세계가 몸살 아닌 지옥 속에 산다. 코로나에 감염돼도 산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생명을 분리수거 하듯 살릴 사람과 버릴 사람을 구별해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고통은 저승사자보다 힘들 것이다.도착 즉시 강력한 사회격리 조치로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 밥에 도토리’ 신세로 비장한 서부생활이 시작됐다. 없던 시절에 먹다 남은 음식을 개밥으로 주었는데 개도 도토리는 골라내고 안 먹는다. 궁하면 통하는 게 사람 사는 법. 화장지에서부터 치약 치솔 등 생필품구입 목록이 태산 같은데 사러 갈 수조차 없으니 비상대책 근검절약 생활방식이 도입됐다.
감염 위험군으로 판단한 아들이 가구 사서 조립해 주고 생필품을 사다 공급해주니 아끼고 또 아껴야 하는 판국이다. 평생에 이토록 검소(?)하게 산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들꽃 꺾어주던 소년에게 소녀가 했던 말 ‘하나도 버리지 마라’가 비상시국 행동지침으로 급부상했다. 요리는 간단하게, 남은 음식은 재활용, 김치국물 넣어 코로나표 부대찌개를 끓여 먹는다. ‘맛 없어 못 먹겠다’는 배 불러 하는 소리. 등산 가서 김치에 비엔나 쏘세지 넣어 끓여먹던 라면은 얼마나 맛 있었던가. 그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견딜 작정을 한다. 정말이지 그동안 너무 흥청망청 살았다.
세상에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살이! 집 살 때까지 시누이 집에 기거한다고 그 집에 둔 컴퓨터와 옷가지는 6피트 거리 유지 명령 준수하며 차고 앞에 내 놓으면 픽업 하기로 했다. 시누이는 고개만 쏙 내밀고 손을 흔든다. 벤허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5년 지하감옥 생활로 문둥병자가 돼 돌계곡 밑에 누이동생과 기거하는 어머니 미리암은 오열하는 벤허를 피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끼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갈라놓고 이방인이 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펜데믹이 사그러들고 삶이 평화로워지면 종족과 국가를 넘어 우리는 서로 껴안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몇 명이 감염됐나 사망자 숫자 열람하듯 텔레비전을 켠다. 그동안 죽음을 너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죽음은 늘 우리곁에 있었다.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매일 어떤 형태로던지 어떤 연유에서던지 죽는다. 그동안 숫자를 세고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의 존엄성도 삶의 소중함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끝이 안 보이는 어둔 터널 속에서 희망을 알리는 생명의 빛을 갈망하며 주검의 숫자가 제로가 될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볼 테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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