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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동부에서 서부로 이민 가기

엄살도 살살 아플 때 떨지 너무 아프면 말이 안 나온다. 죽을 만큼 괴로우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죽기살기로 버티며 살고 싶어한다. COVID-19 감염 전파로 세계가 몸살 아닌 지옥 속에 산다. 코로나에 감염돼도 산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생명을 분리수거 하듯 살릴 사람과 버릴 사람을 구별해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고통은 저승사자보다 힘들 것이다.

40년 살던 터전을 뒤로 하고 각자 트렁크 1개씩 들고 이민 가방 2개에 사소한 물건 담아 서부로 이민(?) 올 때는 청운의 꿈에 부풀었다. 일장춘몽은 깨어나면 준엄한 현실이 기다린다. ‘물에서 탈출한 고기처럼(Fish out of water)’ 임시 아파트에 갇혀 살 줄 꿈에도 알았으랴! 이삿짐 트럭에 바라바리 실어 미리 보낸 가구와 집기, 살림살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 살 경황이 아니라서 언제 짐을 풀 지 모를 일이다.

도착 즉시 강력한 사회격리 조치로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 밥에 도토리’ 신세로 비장한 서부생활이 시작됐다. 없던 시절에 먹다 남은 음식을 개밥으로 주었는데 개도 도토리는 골라내고 안 먹는다. 궁하면 통하는 게 사람 사는 법. 화장지에서부터 치약 치솔 등 생필품구입 목록이 태산 같은데 사러 갈 수조차 없으니 비상대책 근검절약 생활방식이 도입됐다.

감염 위험군으로 판단한 아들이 가구 사서 조립해 주고 생필품을 사다 공급해주니 아끼고 또 아껴야 하는 판국이다. 평생에 이토록 검소(?)하게 산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들꽃 꺾어주던 소년에게 소녀가 했던 말 ‘하나도 버리지 마라’가 비상시국 행동지침으로 급부상했다. 요리는 간단하게, 남은 음식은 재활용, 김치국물 넣어 코로나표 부대찌개를 끓여 먹는다. ‘맛 없어 못 먹겠다’는 배 불러 하는 소리. 등산 가서 김치에 비엔나 쏘세지 넣어 끓여먹던 라면은 얼마나 맛 있었던가. 그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견딜 작정을 한다. 정말이지 그동안 너무 흥청망청 살았다.



세상에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살이! 집 살 때까지 시누이 집에 기거한다고 그 집에 둔 컴퓨터와 옷가지는 6피트 거리 유지 명령 준수하며 차고 앞에 내 놓으면 픽업 하기로 했다. 시누이는 고개만 쏙 내밀고 손을 흔든다. 벤허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5년 지하감옥 생활로 문둥병자가 돼 돌계곡 밑에 누이동생과 기거하는 어머니 미리암은 오열하는 벤허를 피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끼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갈라놓고 이방인이 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펜데믹이 사그러들고 삶이 평화로워지면 종족과 국가를 넘어 우리는 서로 껴안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몇 명이 감염됐나 사망자 숫자 열람하듯 텔레비전을 켠다. 그동안 죽음을 너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죽음은 늘 우리곁에 있었다.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매일 어떤 형태로던지 어떤 연유에서던지 죽는다. 그동안 숫자를 세고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의 존엄성도 삶의 소중함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끝이 안 보이는 어둔 터널 속에서 희망을 알리는 생명의 빛을 갈망하며 주검의 숫자가 제로가 될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볼 테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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