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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그레이 교육재단 설립

올 초에 가족 교육 재단을 만들었다. 뭐 크게 목적을 세우거나 규율을 정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부 기관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것도 아니다. 할머니가 된 후부터 내가 세상에 산 흔적을 이어주는 후세를 위한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됐다. 그리고 훗날 손주들의 교육에 도움을 주고 싶던차에 우연한 기회에 얻은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켰다.

우리집에 매일 배달되는 2-3인치 두께 이상의 우편물 99.9 퍼센트를 차지하는 온갖 비영리 봉사단체의 편지는 남편에게 온다. 국내외의 크고 작은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인 단체는 아주 다양하고 많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을 가진 단체의 편지를 받고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라는 단체들의 모금 운동은 도가 지나친 것들이 많다. 대부분 단체가 마치 수금원처럼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어떤 단체는 매주 끈질기게 보낸다. 남편이 근무할 적에는 그가 퇴근해 오기 전에 정크 메일을 대충 처분했는데 남편이 퇴직한 후로는 어림없다.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것은 남편의 일이다.

비영리단체들이 남편의 마음에 노크하는 방법은 제각기 독특하고 다양하다. 낚시 미끼처럼 동전을 첨부해서 보내는 방안은 배짱 좋은 단체가 하고 남편의 이름과 주소 라벨을 프린트해서 보낸 것을 모은 것도 큰 박스에 넘친다. 더러는 굶주린 아이들이나 학대받은 동물의 충격을 주는 사진을 동봉해서 애걸하는 편지도 있지만 즉각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거나 엄포를 놓는 단체가 있다. 심지어 봉투 외면에 단체의 이름이나 주소없이 ‘2nd Notice’라 크게 프린트해서 보내는 교묘하고 대담한 단체도 있다. 꼭 빚을 진 기분을 주는 이런 메일을 받으면 괘씸한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메일은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지인들과 달리 남편은 자신의 이름으로 오는 편지는 다 열어 보려고 한다. 사람과 동물과 자연 보호 등 온갖 목적을 가진 단체의 취지를 읽고 그 안에 반송 봉투가 들어있으면 마음이 여린 남편은 작은 액수라도 보낸다. 그렇게 후원하니 자선단체의 우편물 공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메일의 분량이 많으니 남편도 조금씩 지쳐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불어 남편은 매일 우편물을 처리하는 버릇이 없어서 집안 곳곳에 정크 메일이 쌓인다. 우편물 처리해 주겠다고 내가 여러번 나섰지만 자신의 메일을 “절대로 손대지 말라” 엄명해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불평하다가 강구한 것이 ‘그레이 교육재단’ 이다. 나도 다른 비영리단체처럼 의도를 적은 편지와 반송 봉투를 넣어서 부치면 후원하라고 당부했더니 남편이 히죽 웃었다.



지난달 애틀랜타에서 딸네들과 모두 만났을 적에 세금혜택은 주지 못하지만 앞으로 기부금을 받는다고 내가 세운 ‘그레이 교육재단’을 광고하니 딸들은 오케이 했고 사위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목표로 삼은 후원자는 딱 한 사람, 만만한 남편이다. 이왕 마음을 먹은 일이라 남편에게 모금 운동을 활발히 했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눈이 초롱초롱한 손자를 페이스타임으로 볼 적마다 교육 기금을 거론한 것이 효과를 봤다. 남편이 그의 비자금에서 만불을 건네줬다. 그가 뒷주머니를 챙기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선뜻 응해줘서 놀랐다. 그날 남편에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워 주며 나는 절대로 다른 비영리단체처럼 자주 괴롭히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두루두루 여러 취지의 단체를 열심히 후원하는 남편보다 나는 냉정하고 실질적이다. 운영비가 적게 들어가고 기부금의 대부분이 직접 목적에 사용되는 내가 잘 아는 몇 비영리단체만 집중적으로 후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도때도없이 기부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지 않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서 좋다. 앞으로 일년에 두 번, 남편에게 기금 캠페인을 벌리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은 나도 보탤 계획이다. 일단 마련된 기금은 재무설계사와 의논하고 안정성보다 투자성이 높은 뮤추얼펀드에 투자했다. 푼돈을 모아서 목돈을 만드는 과정이 어린 손자의 성장 속도보다 빨랐으면 좋겠다. 할머니 노릇 톡톡히 잘하고 싶어 궁리한 교육재단이 훗날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을 생각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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