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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데, 코끝에 닿는 공기가 맵싸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음이 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답지 않게 아직도 가을이 오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다니. 잠시 호숫가 공원 숲이라도 봐야 마음이 나아질 것 같았다. 무료로 제공된 음식도 포기하고, 러시아워에 발이 묶일까 봐 서둘러 빠져나왔으니, 집 근처 공원에서 잠시 여유를 즐길 수도 있겠다.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로컬 길을 택했다. 가을빛에 물든 가로수 사이를 달리기를 십 분 정도, 숲에 둘러싸인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아직은 훤한 대낮, 공원은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다. 호수 옆 벤치에서 아이패드에 머리를 박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정장 차림의 젊은이와 강아지를 앞세우고 트레일을 따라 걷고 있는 한 쌍의 남녀. 고요가 내려앉은 공원 분위기에 내 마음마저 차분해졌다.

아기 손바닥만 한 단풍잎들이 떨어져 있는 호숫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르스름한 부리를 가진 새들이 커다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찹찹한 기운이 목 뒤를 훑고 지나갔다. 사방을 돌아보니 저마다의 빛깔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곳곳에서 옷을 벗었다. 어느새 수척해진 나무들의 모습, 거추장스럽던 것들을 다 떨구고 나면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내며 자신의 본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겠지.

역시 가을은 버리고 떠나는 계절이다. 가을만큼 인생사 진리를 매끄럽게 표현해 주는 것이 있을까.


지난주에 오 년 동안 함께 지냈던 정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늦가을 환절기면 꼭 도지는 천식 때문에 이맘때가 되면 늘 마음을 졸였는데, 결국 올가을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서서히 쇠락하는 건강을 의식하며 예견했던 일이었어도, 이별은 언제나 마음에 허전함을 남긴다. 평상시와 다름없었던 오늘, 혼자 공원에 오고 싶었던 까닭도 아마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어디 있으랴. 늙어서 혼자서 거동하기 힘들어질 때, 과연 누구의 돌봄을 받게 될지, 자식들이 돌봐 줄지,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그리며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죽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면 한숨만 나온다. 그럴 수 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딱딱 들어맞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늙어간다는 건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노인들과 지내다 보니, 아름다운 노년은 결국 지난날 삶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적인 노후의 삶을 원한다면, 젊어서부터 철저하게 건강을 챙기던지, 금전적인 뒷받침을 미리 만들어 놓던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앞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일에 부딪힐 때, 어떤 고통이나 수모도 견뎌낼 수 있는 철통같은 정신적인 무장이라도 단련해 놓아야 한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나는 백 살이 될 때까지 살고프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밥벌이를 계속 뛰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멋진 모습으로 노후를 즐기기를 바라는 이 바람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은 미지수지만 그래도 어쩌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앞서 말한 정 할머니는 젊은 시절 자신이 미리 써 놓은 인생 각본의 주인공처럼 살았던 분이다.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통장에 화장 장례비만 남겨 놓고 돌아가셨다. 자식이 없는 것을 한 번도 한탄하지 않았던 할머니. 적은 돈을 쪼개가면서도 배우 같은 삶을 즐겼던 할머니의 당당했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멋지게 느껴진다.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허락 없이도 떠나는 것이 삶과 죽음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도, 우연히라도 스치고 나면 오히려 삶의 감각을 되살려 주는 것이 죽음이다. 마음으로 의지했던 할머니를 보내고 나니, 길이로만 느껴졌던 삶의 의미가 깊이로 다가온다. 지금부터 30년 후, 내가 정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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