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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랭커스터 아미쉬 마을

필라델피아를 찾아가는 길에 아미쉬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랭커스터에 들렀다. 신선한 가을날, 펜실베니아주 평원에서 아미쉬의 생활을 엿보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목가적인 삶을 사는 아미쉬들이 그들의 집과 농장을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세월에 적응하는 변화다. 믿음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충실하며 전근대적 방식으로 열심히 노동해서 자급자족하는 그들의 삶이 생존경쟁과 부를 추구하는 세속인들의 야망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음을 부러워하며 안내자의 설명을 따랐다.

16세기 종교개혁을 계기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해 나온 유럽 여러 지역의 교인들이 나름의 이유로 장로교, 침례교, 영국성공회와 감리교 등의 교파를 세웠다. 그들과 역시 교리적 차이를 가지자 17세기에 제이콥 암만이 개신교에서 다시 분리해 나와서 세운 엄격한 생활양식을 가진 교파가 그의 이름을 딴 아미쉬다. 유아세례보다 성인세례를 강조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철저히 따르면서 노동과 겸손을 중시하는 아미쉬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서 신대륙 미국에 온 것은 1740년이다. 펜실베니아에 도착한 이들은 1760년에 대부분 필라델피아에서 별로 멀지 않은 랭커스터에 정착했고 더러는 오하이오나 인디애나 등 중서부로 이주했다.

현재 유럽에는 아미쉬가 없고 35만명 정도 미국에 사는 아미쉬 인구수는 빠르게 는다. 하느님의 축복인 자식을 평균 6-8명 가지니 당연한 결과다. 또한 아미쉬에게 세상사람들은 아미쉬와 잉글리쉬, 두 인종이다. 신대륙에 도착한 초기부터 가진 습관이다. 급변하는 세상과 떨어져 초기의 정체성을 지키며 모든 규정을 철저히 엄수하나 현실에 적응하는 자세가 다름으로 자체내에서도 여러 파로 분열되었다.



남녀의 역할이 다르고 교복같은 단색의 실용적인 심플한 의복을 입은 그들은 모두 비슷하다. 톡 튀는 개인성은 보여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돕고 1학년에서 8학년까지 기본 교육은 교실 하나 있는 학교에서 함께 받고 8학년을 마치면 남자아이들은 농축업이나 가내공업에 종사하고 여자아이들은 집안일을 한다. 생업교육은 부모가 맡는다. 16세가 되면 잠시 밖의 세상을 체험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미래 방향을 선택할 기회를 갖지만 90-95퍼센트의 젊은이들이 아미쉬를 선택한다. 아미쉬 가게에서 본 그들이 만든 가구나 목공예품, 퀼트는 심플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아미쉬 가정은 전기 대신에 배터리나 태양 에너지로 냉장고나 세탁기를 사용하고 허영심을 갖지 않도록 사진은 찍지 않아 집안에 가족사진이 없다. 그대로 살다가 떠나니 후손들은 조상의 모습을 모른다. 그리고 거울은 남자들이 콧수염을 밀거나 여자들이 머리를 틀어 올려 모자로 고정하기 위한 목적이고 일반 사회보다 암 발병율도 낮고 자살율도 낮다. 여성들의 의복이 전시된 방에서 그녀들이 사용하는 쇼올을 두르고 보넷 모자를 쓰니 내가 사라지고 단단한 조직의 일부로 숨겨졌다.

종교 집단이지만 교회는 없다. 한 구역으로 형성된 20가정이 2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한 집에 모여 예배를 보고 호스트 가정이 저녁을 대접한다. 보통 20세쯤 결혼하고 이혼은 하지 않고 배후자가 사망하면 1년을 기다렸다 재혼한다. 식구가 불어나면 계속 방을 지어 집을 확장시키고 한 집에 3 세대나 4세대까지 함께 살며 나이든 부모를 돌본다. 그러나 강한 믿음으로 영적인 가족들과 뭉쳐서 살아가는 아미쉬들도 급변하는 현실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하고 조금씩 적응한다. 비상시나 사업을 위해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 집안을 둘러본 후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며 안내자가 절대로 아미쉬의 얼굴을 사진 찍지 말라던 당부는 따랐다. 재미난 사실은 아미쉬들끼리 따로 사는 것이 아니고 잉글리쉬들과 섞여 이웃으로 산다. 말이 끄는 마차가 세워진 집은 아미쉬고 자동차가 세워진 집은 잉글리쉬였다.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넓은 모자챙에 시선을 주고 아미쉬 가게에서 산 따뜻하고 말랑한 프렛즐을 먹으며 나를 아미쉬 환경에 섞어 보았다. 평화로운 정경은 어수선한 세상을 피할 도피처로 안성마춤이지만 그들이 지키는 엄격한 룰을 따를 자신이 없었다. 관광업과 농축업으로 활발한 랭커스터 아미쉬 마을의 평화를 떠나며 보고 느끼지 못한 그들 나름의 문제점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났던 몇 아미쉬인들이 평정을 지키며 차분한 외양을 보여준 것만 가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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