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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길 위에서의 단상

힘든 일에 지쳐서 무기력하고 둔해진 느낌이 들 때,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일은 노선을 바꾸어 달리는 일이다. 차 물결에 휩쓸려 늘 허둥지둥 달렸던 고속도로를 벗어나,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구불구불한 사잇길을 달려서 목적지로 향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휴식처럼 즐기며 달릴 수 있는 사잇길이 내 생활 공간 안에 있다는 게 얼마나 친절한 행운인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굽은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 사이를 달리다가 빨간 신호에 멈춰 선 차 안에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다 보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던 긴장감이 느슨해져서 목적지에 도달할 때 즈음엔 마음이 차분해진다.

혼자 길을 달리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언제라도 따끈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카페가 있고, 찰나의 짬이 운 좋게 생기면 차 안에 두었던 운동화로 바꿔 신고 한 바퀴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덤으로 있는 길, 이제는 고향처럼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는 길, 번잡하지도 한적하지도 않은 사잇길을 혼자서 달릴 때, 내 삶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행복감 때문에 가끔 내 삶이 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함께 식사하자는 지인의 부름에 함께 점심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약속 장소로 갈 때는 고속도로로 갔었지만 집으로 오는 길은 당연히 사잇길을 택했다. 집으로 오는 사잇길을 달리다 보니, 가끔 지인과 함께 걸었던 공원의 표지판이 보였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가 지나가는 한 낮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겨울의 공원, 인적 드문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홀로’라는 감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간.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잎을 털어내지 못한 나무 사이를 스치고 나온 겨울 바람에 코 끝이 맵다. 생각은 흐르는 대로 두고 타박타박 발걸음을 내디디며 가만히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이 너무나 좋다. 아니다, 어쩌면 공허하고 덧없어 보이는 노인들과 삶을 함께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다.

언젠가 어느 시인이 낸 시집을 보다가 ‘홀로움’이란 멋진 타이틀에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시인에게 ‘홀로움’은 홀로 느끼는 즐거움 또는 외로움의 의미보다 더 큰 무엇이 있었을 텐데, 바보스럽게도 나는 상실과 고통을 겪어나서야 비로서 내가 얻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심과 내가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 수 있었다. 뒤늦게라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 삶의 모습에 만족한다.

올해는 유난히 바쁘게 연말을 보냈다. 성탄절과 맞물려 지금껏 따로 세어 본 적이 없는 내 생일을 제 짝을 만난 아이들이 제각각 따로 챙겨준 탓이다. 예전 같으면 남편과 집에서 오붓하게 보냈을 시간에 생각없이 끌려다니다 보니 한 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힘에 부치니 몸도 탈이 났다. 결국 ‘하루하루가 내 생일’이라는 말로 내년부터는 내 생일과 성탄절을 하나로 묶기로 했다. 삶의 즐거움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면 그것이 어찌 내 인생이랴.

누구든 처음 운전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멀리 앞을 보고 달리라는 말이었다. 지금도 가끔 운전하면서 길을 달리다 보면 문득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멀리 앞을 보고 운전해야 차가 똑바로 갈 수 있다는 말이 왜 그땐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운전 경력 40년이 되어가는 지금, 주변의 풍경을 눈에 바라보며 느긋한 마음으로 사잇길을 달릴 수 있는 것도 멀리 앞을 보고 달릴 수 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인생길 또한 그와 같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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