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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先) 기도, 후(後) 치료

한의학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약 5000년전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소문 이정변기론(移精變氣論)과 영추 적풍(賊風)편에는 당시 의료인들이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古之治病, 惟其移精變氣, 可祝由而已.” 태고시대의 질병 치료는, 정신을 움직여 기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오직 기도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그 후 기도만으로는 부족하여 침이나 약재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원문에서 축유(祝由)란 그 병의 원인이 어디서 유래(由)하였는지 하나님께 고백(祝)하는 기도를 말한다. 그래서 신유(神愈) 기도는 특정 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다.

서양의 진화론은 태고시대 사람들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하여 거의 원숭이 수준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은 진화론을 강력히 부정하며, 오히려 태고 시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보다 훨씬 더 영적이며 지혜로웠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람이 영적 체질에서 육적 체질로 쇠퇴하면서, 급기야 기도만으로 치료되기는 힘들어 졌고, 추가적으로 침 뜸 한약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를 버리고 약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를 주(主)로 하고, 약은 보조적으로 추가하여 사용했다는 것이다.

황제내경에 등장하는 기백(岐伯)이라는 전설의 명의가 약 4백년전 청나라 초기 진사탁이라는 한의사에게 전해준 동천오지(洞天奧旨)라는 책에는 신유기도와 약의 우선 순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必須省察禱謝,而後用藥治之,始能癒也.“ 필수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기도를 먼저 드리고, 후에 약으로 치료하라. 그리해야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언급하기를, “?更加?悔祈禱,尤爲善後之福也.” 특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참회의 기도를 더하고, 선한 생활을 도모하면 후에 복이 임하리라. 그래서인가. 한의학 고전을 읽다가 종종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무릎을 꿇게 된다.



이러한 신유기도의 원칙은 비단 환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치료하는 의사 역시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때론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과신, 간절한 기도 없이 습관적으로 치료에 임할 때가 있다. 사실 필자 자신도 늘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만약 환자가 성인이 아닌 어린 아이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진사탁의 변증록(辨證錄)에 따르면, 자녀의 질병은 대부분 부모의 죄로 인한 것, 그래서 자녀를 치료하기 전에 그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선행돼야 한다. “父母未有不愛其子者”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見其子生病” 자녀가 병난 것을 보면, “未必不疑自身之譴尤” 반드시 자신의 허물과 성냄을 깨닫고, “而畏鬼神之作?” 또한 귀신이 역사하지 않았나 두려워하고, “或告天而代爲請禱”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자녀의 질병을 대신하고 싶다고 간청하고, “或信佛而自訴祈求” 하나님을 의지하며 질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의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의사는 치료의 동기를 더욱 부여 받아 측은지심으로 환자를 돌보니 하늘이 그 자녀의 치료에 함께 한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약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이정변기(移精變氣)하는 축유(祝由)기도만으로 병을 고치셨다. 히스기야 왕은 회개(悔改)기도를 먼저 드린 후에 무화과 연고를 종기에 발라 치료했다(왕하 20:7), 아사 왕은 기도없이 의사만 의지하다 2년후 결국 사망했다(역대하16:12), 다윗 왕은 밧세바와 간통 후 나은 아이가 질병에 걸렸을 때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했다(삼하12:16), 비록 그 아이는 죽고 말았지만 그 날 이후로 자신의 정욕을 철저히 반성하였기에 노년에 신하들이 아비삭이라는 처녀를 데려왔지만 절대로 동침하지 않았다 (왕상1:4).

그러나 때로는 질병이 환자 자신의 문제도 아니고, 그 부모로 인한 유전적 문제도 아니고, 특별한 하늘의 목적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요한복음9:3). 일단은 자신의 삶을 먼저 성찰해 보자. 그래도 양심상 거리낌이 없을 경우 우리가 아직 모르는 하늘의 섭리가 있는 줄로 여기고,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기도는 ‘By the name of Jesus’가 아닌, ‘In the name of Jesus’로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By’는 ‘수단과 방법’을, ‘In’은 ‘안에 거하는 상태’를 뜻하므로, 기도의 능력은 입술의 주문(incantation)에 있지 않고, 일상의 선한 삶 속에 있음을, 질병치유는 의사의 도움을 받기 이전, 자신이 먼저 해법을 갖고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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