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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인 올림피언의 조국 사랑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체조 국가대표로 참가
입장권도 없어 경기장 밖에서 개막식 지켜봐
일왕 개회선언…나라 잃었던 설움 다시 떠올라

1964년 10월 10일 도쿄 올림픽 경기장. 최명자(71)씨는 가슴에 ‘KOREA’ 국호를 달고도 경기장 밖 먼 발치에서 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봐야 했다.

경희대학교 체육무용과 1학년생이었던 그는 남녀 각 8명씩으로 구성된 체조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아시아 최초로 열렸던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웃나라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국은 올림픽 대표팀의 여행 경비조차 대주지 못했다. 당시 경영대표팀은 훈련지가 마땅치 않아 한강 물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절이다.

최씨의 종목은 튐뜰과 마루 운동. 체조팀 동료들과 함께 1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체조 시범으로 출전 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 한국에는 개막식 입장권 조차 대표팀 선수 수만큼 주어지지 않았다.

개막식에서는 쇼와 일왕이 개회를 선언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정신적 지주이자, 라디오를 통해 일본의 항복 선언문을 낭독했던 그 일왕이었다. 최씨와 체조대표팀은 경기장 밖에서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1988년, 서울에서 다시 모인 이들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살아온 최씨는 “고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에 얼마나 뿌듯했는지, 도쿄에서의 억울했던 기억이 싹 가시더라”고 회상했다. 최씨는 운영위원으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해 경기 진행부터 영어 통역까지 조국 알리기에 앞장섰다.

1988년 당시 최씨는 남편 이종호씨와 함께 사바나 지역 최초인 ‘마스터 리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세대가 넘도록 ‘국기’인 태권도 보급에 힘을 쓴 덕에 이들 부부는 사바나 지역 어딜가나 ‘마스터’(Master)로 통한다. 주민들은 물론 고위 정치인들도 이들 앞에서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요즘도 매일 아침 집근처 YMCA에서 3시간씩 태극권(Tai Chi)을 지도하는 최씨는 70세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유연성을 자랑한다.

최씨 부부는 다음달 개막하는 리우 올림픽을 계기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선다. 미주총연내 ‘평창 동계올림픽후원 조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미국민들을 상대로 평창을 홍보하고, 각 지역 한인회별로 모금활동도 벌일 계획이다. 이들은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우리 인생 마지막이자 최고의 도전, 필연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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