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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봉의 ‘미국에서 세자녀 키우기’

지킬 수 있는 법 만들고 강제하는 사회

올해 5월 이사를 했다. 화려하지 않은 낡고 소박한 집이다. 전에 살던 타운홈과는 달리 우리 가족만의 울타리가 생겨서 좋았다. 집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래된 인테리어를 좀 바꿔보고 싶어 입주 전 공사를 하기로 했다.

HOA(Homeowners Association)가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하는 타운홈 살 땐 몰랐다. 싱글홈은 집주인이 자잘하게 신경 쓸 게 많다는 것을. 사소한 공사라도 사안에 따라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빌리지에서 누가 나와 공사중지 빨간 딱지를 붙여놓고 갈 때까지는.

흔히 쓰는 영어 관용구 “pain in the butt”의 의미를 체감하게 됐다. 시공업자를 라이센스 소지자로 다시 찾아야 했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다. 주 원인은 규정에 맞지 않은 공사였다. 이미 설치해놓은 벽을 모두 뜯어내는가 하면 자재와 설비를 아예 새로 구입해야 했다. 돈을 아껴보겠다고 내연재를 아무거나 사서 채워놨다가 도로 다 빼내야 했다. 화재 및 일산화탄소 경보기 등을 인터넷으로 싸게 주문해 달아놓으면 퇴짜를 맞았다. 결국 관련 자격증이 있는 기술자를 불러 설치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공사하는 것보다 더 손해를 봤다.

빌리지에서 최종 승인을 받던 날, 속으로 궁시렁대며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른다. 조사관 본인 집도 이렇게 까다롭게 공사하지 않을 거면서 왜 나만 못살게 구냐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지 않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난 주말 아내는 일을 하러 나갔고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국통을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잠깐 2층에 올라갔다. 침대에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한참 잘 자던 중 갑자기 천지를 울리는 소리에 놀라서 깨어났다. 방마다 달아놨던 경보기들이 귀청이 떨어지게 울리고 있었다. 아차 가스불!!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불을 껐다. 국통은 타다 못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1층은 연기로 가득 찼다. 그 상태로 30분, 1시간 더 있었다면 어찌됐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테지만 장담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이래서 경보기를 반드시 설치하게 했던 거구나. 식은 땀이 났다. 만약 빌리지에서 무허가(?) 공사를 제지하지 않아 경보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유선 중앙통제식이 아닌 싸구려 개별 경보기를 달았다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밑에서만 울려 2층에선 잘 들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에서 슬픈 소식을 접한 것은 그 직후다. 고등학생들이 펜션에 놀러갔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단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우리집에 있는 수준의 경보기나 하다못해 배터리 작동식 경보기만 달아놨어도 그런 참사는 없었을 텐데. 보일러를 규정에 맞게 설치하고 상업용 숙박업소는 매년 유자격자가 점검하게 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법만 만들면 그만이라는 입법(立法) 만능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설사 법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강제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법(司法)과 집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국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무슨 일만 터지면 기존에 더해 규제만 더 만들 뿐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당한(?) 것처럼 하면 된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반드시 그것을 강제한다. 지키지 않으면 처음부터 규정을 준수했을 때와 비교해 큰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 법 지키는 사람만 바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이번 일도 보나마나 펜션 주인과 보일러 설치 기사 구속하고 대충 마무리지을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미안하지만 미국에서 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관세사, Grainger사 재직)


봉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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