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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1978년 봄나무가 푸르게 아름다웠던 기억

오늘도 푸르게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다 시카고 오헤어공항에 첫발을 디딘 그날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긴 시간이 살같이 지나갔다. 오래 살다 보니 이곳이 더 편해진 탓인지 이번 가을 40년 만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이제 한국 가면 시카고 촌놈, 거리의 미아, 바보 간첩 떴다고 친구들이 놀려댈 거라고 겁부터 준다.

그날이 임박해오면 아마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이 찿아올 거란 생각이 든다. 푸르른 청년에서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기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처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가운데 토막 같은 절절한 세월을 이국 땅에서 보내다 보니 눈을 뜨면 부딪쳐오는 난관들이 참으로 힘들었었다. 그때만해도 못사는 나라, 존재 없는 조국 때문에 괜히 주눅들고 기를 펴지 못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태도는 자못 신기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Highway를 달리다 보면 현대나 기아 자동차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손에 든 삼성 핸드폰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식당이 정착되기 어려웠던 80년 90년대에 비하면 젓가락 사용이 꽤나 능숙한 외국인들을 만나기는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사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의 눈부신 발전 탓에 미국에 사는 Korean-American들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변해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지고 황폐해 지는 것 같다. 자기만의 울타리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려 하지 않고, 훈훈한 사람들의 관계는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바뀌어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되기도 한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어주고, 오리를 함께 가기를 원하면 십리 길이라도 동행해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나, 헐벗은 거지에게 떡 몇조각 전해주기 위해 먼 길을 걸어 선행을 베푼 노자의 이야기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건 왠일일까?

온종일 걸어 넓은 땅을 차지한들 힘들어 생명을 마감한다면, 마지막 그가 차지한 땅은 간신히 다리 뻗고 누울 한 두 평의 땅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물어오는 톨스토이의 허망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제 만나게 될 푸르른 기억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바로 이런 말들이 아니겠는가.

창가에는 꽃향기가 불어오고 잠들지 못하는 밤.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세상살이에 흐드러지게 핀 데이지의 미소가 정신을 차리는 유월 초하루의 밤은 깊어만 간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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