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의 작음을 알아갈 때...

나만의 은밀한 장소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일상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메마른 내 마음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편안한 쉼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때론 시간의 초침을 세우고 나를 돌아 보게 하는 평정의 뜨락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나는 지금 Palatine Library 2층 소파에 앉아있다. 대형 창문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분주했던 하루가 지나고 잔잔한 무늬의 고요한 연못과 하늘에 맞닿은 키 큰 나뭇숲과 그 사이로 작은 산책길을 따라 잔잔한 들꽃들의 미소가 환하게 번져온다. 푸릇 푸릇 연두빛 싹들이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져 가는 봄날도 깊어가고 있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분주했던 일들과 얽혀진 삶의 무게가 풀어지는 편안함을 느낀다.

대궐 같은 집에, 편한 환경에, 날마다 산해진미로 배를 불려도 내면의 기쁨과 평안함이 없다면 그건 진정한 축복은 아닐 것이다. 자존감이란 그런 점수로 매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하물며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모두가 점수가 되어 평가되는 세상 속에서 내 마음의 그릇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내 발길은 날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관심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는 없다.

봄이 봄다운 것은 생명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저만의 향기를 번져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다움은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사랑과 이해의 바탕에서 자신을 빚어갈 때 비로소 사람다울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죽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처럼, 오늘도 변화되고 새롭게 지어져가지 않는 사람 또한 살아있다 말할 수 없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야 하고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피로가 풀어지는 시간, 소파 앞 탁자위로 두발을 길게 뻗어본다. 오월은 푸르게 자라나고 그 봄 앞에 서면 나도 자라고 싶고, 나도 꽃 피우고 싶다. 키 큰 미루나무에 기대면 자라지 않는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모로 눕는 햇살의 따사로움에 기대어 나의 작음을 알아갈 때,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닌 것이다. 그리움은 더 이상 그리움이 아닌 것이다. 절망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닌 것이다. 꽃으로 피어나고, 바람으로 다가오고, 꽃으로 피어나고, 바람으로 다가오고, 푸른 잎으로 돌아오는 끈질긴 생명인 것이다. (시카고 문인회장)

오월의 십자가(신호철)

한 웅큼의 말을 땅에 뿌렸다
긴 세월 잊혀진 말들은
씨가 되어 싹을 내었고
대지는 얼굴을 바꾸었다
이야기가 되어 자라나고
그 자리마다 채워지는
바람의 소리며
모로 눕는 햇살의 따사로움이며
그대들의 눈물들이며
손짓하는 자유가 되었다
슬픔이라는 말은 꽃으로 피어나고
외로움이란 단어는 바람으로 다가왔다
절망이란 손짓은 푸른 잎으로 돌아와
오월 하늘에 가득하다

오월은 푸르러도
먹먹히 아파 붉어지는 시간
걸음마다 길이 되어 오는
그대들의 말은 십자가로 세워지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오월은 한없이 숙연해져
고개 들 수 없는 미안함
그대 안으로 한없이 들어가는
오월은 망각 중이거나
기억해 내는 거울 이거나
오월은 기뻐도 슬픈 계절
행복하도록 아픈 계절
높이든 빈잔에 빨갛게 담겨지는
오월의 숨결,
오월의 십자가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