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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굿바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장사 똥은 똥개도 안 먹는다. 강산이 서너번 바뀌는 동안 화랑 경영하며 몸도 마음도 폭삭 늙었다. 멋진 그림 앞에서 폼 재며 쉽게(?) 돈 벌면서 왕소금이라고 애들이 불평하는데 오그라지고 타들어간 내 속을 알기나 할까. 남의 지갑에서 돈 빼내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매 순간 스릴과 서스펜스, 희비쌍곡선이 오락가락한다. 우리 고객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수입이 상위권에 속하는데 돈 좀 잘 번다고 상류층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미국의 상류층은 상상을 초월한다. 화랑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하거나 상류층 진입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다.

미국 백인 상류층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백인과 유대인 점유의 세계 미술시장에서 대규모 화랑 경영하며 살아남은 전략은 ‘밀리면 죽는다’다. 확실한 마케팅 전략과 전문지식으로 친절하지만 당당하게, 고객을 존중하며 제압하는 양면 작전으로 끝까지 버티며 맞짱 떠야 거래가 성사된다. 돈 냄새 맡고 쫄랑거리며 서두르거나 비굴해지면 끝장이다. 씨름은 두 선수가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넘어뜨려 승부를 겨눈다. 현명한 장사꾼은 샅바를 단단히 잡고 고객을 자빠트리지 않고 스스로 항복(구매) 할 때까지 인내심으로 버텨야 이문을 챙긴다. 딜을 할 때 내가 가진 패를 너무 빨리 까발리면 흥정에서 밀린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무표정의 포커페이스(Poker Face)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고객의 필요(Need)에 귀 기울이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30년 불타는 청장년을 바쳤던 소매 화랑을 정리하고 온라인 갤러리를 오픈했다. 오랫동안 태평양이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작은 둥지 틀고 들려오는 고향의 피리소리에 귀 쫑긋 세우고 천천히 아침식사를 하며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싶었다.

화랑 문 닫기 3일 전 ‘Never Say Goodbye’(절대 ‘굿바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란 타이틀 붙여 고객들에게 작별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 화랑은 매주 아름다운 그림과 글이 담긴 이메일을 고객들에게 보낸다. 소매 장사 접고 나면 외상과 재고만 남는다고 한다. 다행히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작품들도 모두 정리했다. 건물 팔려서 얼씨구 하던 환호도 잠시, 막상 40년 살던 중서부 텃밭을 정리하고 떠날 생각 하니 허허벌판에서 갈 길을 잃는 철새처럼 마음이 슬퍼졌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아 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중략) 내일 아침 눈물 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약조한대로 30일간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절세 미인 송도 명기 황진이가 한량 소세양과 작별하며 써 준 시다. 황진이는 30일 동안 한 남자와 사랑을 나눴는데 나는 30년을 그림과 인생을 오가며 미친 사랑 놀음에 영혼을 불태웠다.

잡초 무성한 공터에 화랑 신축공사 첫 삽질하던 그 흥분됐던 기억이 아직 손끝에 짜릿한데 떠날 시간이 오다니. 화랑 열쇠를 새 주인에게 넘겨줄 때는 화선지에 번지는 먹물처럼 아득한 슬픔이 다가오리라. 달빛 아래 이별시를 적는 날은 하늘도 울고 파도도 흐느끼리라.

사랑하는 이여. 마지막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다시 만날 날들을 기약할 수 없다 해도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듯 이별하고 만나고 또 헤어지는 날들 속에서 바람결에 당신 목소리 기억할게요.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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