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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남릴리 - 시골 비지떡과 콩잎

가끔 우리는 “싼 게 비지떡이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들으니까 새롭고 재미있다. 콩은 “밭의 고기”라 불릴 정도로 영양가 있는 음식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보약처럼 질이 좋아 몸에 이로운 비지떡의 진가와 수많은 떡 중에서 어떻게 특별히 뽑혀서 빛을 못 보는 그늘 모퉁이로 밀려 버렸는가 생각해 본다. 값이 싸니까 가치와 실속이 없다는 사실을 유머스럽게 표현하려고 그런 것 같다. 비지를 만들 때 콩 향기가 물씬 풍기는 깊은 맛을 음미하고 김을 쐬면 미용에도 좋다니까 여러모로 흥미롭다.

대두 콩을 퍽퍽 잘 씻어 갈아서 꼭 짜면 비지가 되는데 맛이 담백하고 온정이 깃든 음식이다. 고향에서는 비지떡을 먹고 있으면 시선이 식탁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옆에 사람이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언제 자리를 떴는지, 누가 점잖게 성큼 다가 온 후 서성거리고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한 후 나중에 서로 마주보고 폭소를 터뜨린다. 그토록 맛난 비지떡을 그저 아무렇게 견주는 것이 한편으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들기 쉽고 간편하며 정갈한 떡이라 특히 농촌에서는 벼를 추수하는 들에서 간단한 점심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장마철과 우기가 있을 때는 떡을 하기보다는 김치나 채소를 얇게 썰어서 비지를 넣고 부침개도 만든다. 지구상에서 이만큼 귀하고 즐겁게 먹을 것이 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콩은 원래 식물성 양분이 채워져 있으니 논밭만큼 넓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성능 좋은 차의 엔진처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단다. 풍년이든지 흉년이 들 때라도 땀 흘려 추수한 전원생활의 농가에서는 이웃들과 진실한 삶의 기쁨, 충만으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콩잎을 실로 묶어서 차곡차곡 된장단지에 넣어뒀다가 얼마 후 꺼내먹으면 맛깔스런 좋은 반찬이 된다. 그 옛날 청사초롱 불 밝히며 호롱불 켜던 시절, 해 짧아 어두운 겨울 초저녁에 어두컴컴해도 더듬으며 콩잎을 흘리거나 찢어지는 것 없이 한 잎씩 잘 떼어 먹는다. 콩밭이 따로 있어도 벼 심어진 논두렁에 농부들은 대두 콩을 심기도 한다. 콩잎들이 청춘 아베크처럼 촘촘히 붙어 자라며 생동감 넘치도록 숱한 잎사귀로 들녘을 새파랗게 장식한다. 어릴 때 아스팔트 깔린 도회지에서 수돗물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생각 해 보면 샘물 먹으며 흙이 펼쳐진 대지에서 키우는 풍성한 농산물의 광경도 볼 수 있었기에 참 다행스러운 것 같다.

파릇한 그 순수함을 감추지 못하는 콩잎들은 촌락 애향을 안은 땅의 흙고물을 마다하고 천지에 진초록 빛 옷을 입힌다. 한들거리는 약한 기운으로 가냘프게 올라오며 바람과 함께 만찬을 연다. 한 뿌리씩 눈여겨보면 마치 수줍고 선량하며 맵시 있는 열아홉 살 숫처녀 같기도 하다. 여름에는 과수원 원두막에 앉아서 비지떡을 먹으며 웃음꽃 피는 이야기로 어느 새 시간이 지나 석양빛이 서쪽 하늘에 물든다. 금방 딴 풋과일을 지푸라기에 쓱쓱 닦아 먹을 때 입안에서 과즙의 매혹이 흐르는 아름다운 환경과 한국 고유의 전통 음식이 있는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멋지다. (수필가)


남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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