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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봄날의 향수

마치 그리운 이가 있어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하루에 한번은 달려나가 휘 돌아오는 산책로에는 말과 소가 있는 우리가 있어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는 퇴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생명의 움을 틔워내는 숲길을 걷노라면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구불한 길에서 세월을 잊고 어린 시절 고향길을 걷는 기분이 된다.

귀에 익은 멜로디들이 연상되는 가운데 요즘 같은 봄철에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소절이다. 육이오 사변이 끝나던 해부터 불려지기 시작해서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흔드는 가요, ‘봄날은 간다’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운 이들을 불러오는 초혼가가 된 듯하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곡을 듣던 어린 시절부터 그 노래를 애창하던 가족, 친지들을 떠올리며 다시 불러보는 노랫말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애닯다.

지리산 계곡의 칠흑 같은 어둠과 물소리를 배경으로 ‘사랑’, ‘비목’이나 ‘명태’ 등의 가곡으로 한껏 노래실력을 뽐내던 군중 사이에서 며칠간의 산행 내내 말없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한 철학도가 기대치 않은 가창력으로 ‘봄날은 간다’를 불러제끼고 난 후, 순간의 침묵이 떨어졌다. 이어 타닥거리는 모닥불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던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 젊은 날의 빛바랜 사진첩에 섞인 잊지 못할 삽화의 한 장면이다.
시집온 지 얼마 안된 새색시라면 당연히 고운 빛깔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지내던 시절의 고향 동리에는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하며 슬퍼하며 소박한 정을 나누던 다양한 모습의 고향사람들이 있었다. 얼었던 땅이 풀리고 농번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광주리에 그릇을 담아 팔러다니는 아주머니들이 마을에 들어오곤 하였다. 햇살 밝은 창호지 문안의 사랑채 방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고, 광주리에는 보리문양의 사발이며 분홍 복사꽃 무늬의 접시, 앙징스런 간장종지 등이 가지런 가지런 담겨있었다.

아직 삼십도 채 안된 고운 엄마 곁에 숨소리도 안내고 앉아서 신기한 세상을 엿보던 시절이었다. 삶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으며 아주머니들은 읍내에서 보고온 남진 주인공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창 유행하던 ‘동백아가씨’를 부르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늘 기억에 남아있다. 어른들이 부르던 가요를 들으면서 태어나기도 전의 아득한 그들의 삶이 아직 어린 마음에도 그립고 그래서 우수가 느껴지던 연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먼지 나는 신작로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양지녘에 앉아 갓 캐온 나물이며 푸성귀를 놓고 파는 행상 아주머니들이 보이고, 그들이 걸어나온 산자락 아래 동네들이 그림처럼 들녘 끝으로 깊숙히 들어가 보이던 정겨운 풍경이 마음속에 차례차례 떠오르는 봄날의 향수. 그런 날들이 이어져 반 백년을 넘게 살아온 지금에 와서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어린 날 그리워했던 기억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진 도타운 기억으로 인해 혼자서도 고독하지 않고 어디를 걸어도 가슴속에 따뜻한 노을 어린 고향 들판이 펼쳐진다.

풀 말라가는 냄새가 그리워 폭염의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가던 젊은 날처럼, 고향길을 걷게 하는 스프링 밸리의 산책로를 걷고 또 걸으며 그리운 이들을 추억한다. 우리의 봄날은 갔어도 여전히 봄은 오고 있다. [종려나무교회목사, Ph.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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