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조개는 살기 위해 운다

결국은 터졌다. 눈물이 봇물처럼 흘러내린다. 그동안 용케도 잘 참았다. 잘 버텼다. “엄마, 이젠 제 등에 기대도 돼요.” 아들의 그 한마디가 강심장을 멍들게 한다. 살벌하면 눈물이 안 나온다. 사랑과 배려, 함께 나누는 고통과 아픔이 뜨거운 눈물로 가슴 적신다. 벌써 이렇게 자랐나. 늦둥이로 태어나 할머니께 갖은 응석부리던 막내아들이 내 손과 발이 되다니 설움에 받쳐 하루 종일 울었다.

3월 중순 희망 가득 찬 이민가방 들고 서부행 마차 대신 비행기 탔을 때부터 조짐이 불길했다. 도착 즉시 우리 세 식구를 코로나 위험군으로 판단한 아들이 매일 식료품과 일용품을 사다 나른다. 그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토록 왕창 스타일 구길 줄이야! 태평양이 아득히 보이는 해변에 아담한 초가삼간 마련해 화랑 열고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날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꿈은 일장춘몽! 꿈을 송두리째 앗아간 적에게 권총 한 방 못 쏘아보고 마스크 쓰고 먹고 자는 식물인간이 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들에게 빌붙어 사는 게 너무 쪽 팔리고 미안하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아들에게 짐짝 되는 게 미안해서 아들 몰래 홀로서기 하려다 들키면 꾸중 듣는다. “엄마도 이젠 청춘 시절이 아니예요. 좀 편하게 살 생각을 하세요. 미안해 하지 마요. 내가 엄마를 지킬게요”라고 젊잖게 타이를 땐 슬픔이 벅차오른다. 애들 눈에 내가 그렇게 늙고 힘 없어 보였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용감했다. 필요한 것은 언제던지 아낌없이 공급하는 마술사였다. 문제가 발생하면 척척박사로 해결했다. 어느 장수, 영웅호걸 못지 않게 자식들 위해 일편단심으로 세상 굳은 일 모진 풍파를 막아냈다. 엄마는 요술방망이! 뚝딱 한 번 휘두르면 별사탕이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고 무지개 속에 꿈이 아롱거렸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더 맛나서 침 흘리며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힘들어도 자식들이 용기 잃을까 절대 티내지 않았고, 아파도 자식들이 슬퍼하고 걱정할까 봐 몰래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엄마는 집안을 지키는 근위대장, 가족을 보호하는 수호천사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시간들이 벌써 다 지나갔을까. 어느새 떠나가는 세월의 뒷전에서 자식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날들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눈에도 안 보이는 이 망할 놈의 바이러스가 아직은 뜀박질하는 내 심장을 멍들게 한다.

‘거친 모래알은 /어미의 품속으로/사정없이 파고들어와 둥지를 튼다./어미의 보드랍고 여린 살을/사정없이 찌르니/(중략)쉼없이 쏟아내는 눈물로/거친 아이를 /생명싸개처럼/싸매고 또 싸맨다./그렇게 세월 오랜 후/낡고 늙고 쇠약해진 빈 몸으로/ 토해내는 것이 있으니/눈물로 태어난 /백옥의 진주 하나 (글 김선화)

진주는 살아있는 조개 속에서 외부에서 물질이 침입했을 때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탄산칼륨과 단백질을 분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구의 종말을 예고하듯 우울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하고 갈라놓아도 백옥 같이 단단한 진주 한 알 가슴에 품고 있으면 어둠도 절망도 헤쳐가리라.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나락에 빠져 절망에 허덕일 때, 죽음의 공포로 삶이 흔들릴 때, 아픈 손 잡아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조개는 운다. 살기 위해 눈물 흘린다. 조개가 흘린 눈물이 영롱한 진주가 된다면 끊임없이 울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빛나는 한 알 진주를 위해. (Q7Edition 대표, 작가)


이기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