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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나목

나목

너를 통해 본다 / 늘 나를 통해 보았다 / 늘 나를 보며 나를 알았지만 / 너를 보며 살아감을 배우고 / 너를 보며 인내를 배운다 / 초록의 싹과 설레이는 꽃봉오리 / 그리움은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다

끝도 없는 어둠 속에라도 /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 너는 소리없이 뿌리를 내린다 / 가끔은 포기할 만도 한데 / 네 속의 꿈을 잊지 않고. /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 그리움은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다

봄날에게 손을 내민다 / 남은 이의 몫이 가엽다 / 밤새 눈이 기척도 없이 내리고 / 뼈마디 마다 얼음이 얼고 / 찬바람 속에 밀려오는 그리움 / 연인의 무거운 고백처럼 / 하늘을 날아 노을로 번진다



미련한 게 사람이라더니 / 나는 너에게 또 묻는다 / 그리움은 어떻게 견디느냐고

90번 하이웨이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내가 향하여 가는 같은 방향으로 구름이 길게 따라오고 있다. 같은 방향의 길 뿐 아니라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같은 길로 길고 가는 구름이 이어지고 있다. 흡사 하늘의 길이 열린 것처럼, 나는 하이웨이를 달리고 하늘길은 구름으로 길게 펼쳐져 오랜동안 차창을 따라오고 있다. 나뭇가지에 앉은 적당한 꽃눈을 바라보며 포근함과 정겨움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만을 보고 살지 말자 생각했다. 그 말의 뜻을 왜곡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내가 서있는 주변의 풍경과 나와 연결되 있는 배경을 함께 보면서 살고 싶다는 바램이다. 주변이 보이지 않았던 긴 세월이 있었다. 출근길 하이웨이에서 시카고로 향한 진입로를 락포드로 올라가는 입구로 차를 몰아 긴 거리를 돌아 가야 했던 난감한 날들이 많았다. 봄날에 피어나는 꽃몽오리의 기억도, 창가를 두드리는 빗줄기의 불협화음도, 붉게 물든 언덕과 가로수의 단풍도 기억할 수 없었다. 아득한 잠결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도, 밤새 소리없이 하얗게 세상을 덮은 기적같은 설경의 추억도, 쑥쑥 자라나는 싹들과 가지마다 맺힌 움들이 연둣빛 기지개로 잎사귀를 밀어내던 뒤란의 풍경도 기억할 수 없던 삭막한 인생의 날들이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차창밖을 따라오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지마다 쌓여있는 빛나는 눈꽃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나에게 나는 말했다. “오래 견디어냈어, 그 긴 세월을 어찌 살아온 거야?” 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내 눈에 눈물이 그렁 고인다.

하나를 가지면 두 셋을 갖고 싶고,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득 곡간을 채워야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세월에 비해, 다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나목과, 서쪽 하늘을 온통 물들이며 아름다움을 뽐내던 노을도 어둠이 깊어지면 별빛에게 하늘을 내어주고 사라지는 노을처럼, 우리네 인생도 쥘 때와 놓을 때, 가질 때와 버릴 때를 구분할 줄 아는 풍경들이 내 눈에, 아니 내 가슴에 자리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액자 속에 담겨진 한폭의 풍경화다. 인생의 시간이 다 끝난 후 우린 한폭의 풍경화를 들고 저마다 당신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풍경화 속에 비친 내 모습을 거울을 바라보듯 선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자못 궁금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은 차가운 겨울날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한그루의 나목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다. 가지마다 영롱한 눈꽃을 피우고, 혹한을 견디고 있는 나목으로 그려지고 싶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한폭의 어울어진 풍경으로 남고 싶다.

인생의 고단한 겉옷을 벗고 침묵으로 겨울을 견디어내는, 찬란한 그리움조차 숨죽이는 들판에, 하늘 향해 두팔 높이든 나목에게 사랑과 경의를 보내고 싶다.(시인/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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