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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추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우연이 필연을 낳고 필연이 운명을 바꾼다. 인연은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도 자연도 예술도 우주도 연을 맺으면 필연이 되고 운명을 바꾼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간딘스키는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도르팟대학 법학과 교수로 임용된다. 우연히 미술 전시장에 갔다가 벌판에 마른 잡초를 쌓아둔 그림을 보고 ‘도대체 뭘 그린 거지?’라는 의문에 빠진다. 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던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1890-1891유화 시카고 아트 인스티드 소장)였다.

작품에는 벌판에 에스키모 얼음집처럼 생긴 두 개의 건초더미만 보인다. 모네는 시시각각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를 화폭에 담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알 수 없는 그림’이라는 그 미지의 생소한 체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다. 추상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다.

눈에 콩깍지가 끼면 세상이 잘 안 보인다. 사랑의 콩깍지가 끼면 한 사람 얼굴만 보인다. 생의 비극과 아름다움을 관통하는 창조에 눈을 뜨고 ‘예술’이라는 단어로 눈을 콩깍지로 도배하면 세상살이에 별로 관심이 없어진다. 안 먹어도 배 고픈 줄 모르고 잠 안 자고 밤 새우며 창작에 몰두해도 지치지 않는다. 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절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피곤과 나태함이다. 줄기차게 바쁜 인생 항로에 ‘창조의 눈’을 지닌 사람은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힘을 갖는다. 콩깍지 눈에는 콩깍지만 보이듯 예술가의 눈으로 보면 의미를 부여하고 창조해야 할 대상과 사물들이 도처에 널부러져 있다.

눈이 세상을 읽는다. 나를 바로 세우고 생의 목표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다.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지구의 자전 축은 공전 궤도면에 대하여 66.5도 가량 기울어져 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과 같은 삶, 매일 사는 일이 팽이 돌리기 같이 어지러워 지축이 기울어진 걸 생각 못하고 산다.



간딘스키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가장 순수한 조형 요소인 색과 형태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칸딘스키의 이런 생각은 곧 ‘추상(抽象)’이라는 개념을 의미한다. 추상의 반대 개념인 ‘구상(具象)’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그림을 말한다. 바실리 간딘스키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이 주도하던 시기에 추상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화가로 20세기 추상미술의 대가로 꼽힌다. ‘검은 곡선과 함께’(1912유화 조르주 퐁피두센터 소장)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뮌헨 시기에 그린 그림으로 본격적인 추상 회화에 몰입하기 전 비대상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다. 선과 크고 작은 점, 그리고 다양한 색채로만 이루어진 화면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칸딘스키는 구상보다 추상이 더 순수하고 감각적이며 단순한 색과 형태로만 완벽한 추상미술 세계를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상은 시각의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안 보는 것, 아직 못하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자유로운 여행을 가능하게 하다. 틀에 박힌 하루가 지치고 피곤할 때 선과 점, 혹은 음표로 수신이 불가능한 암호 날리며 공중에 둥둥 떠 다니면 어깨에 날개가 돋을 지도 모를 일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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