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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 김경자 전 한인회 수석부회장

“커뮤니티 발전, 작은 기여라도 하고파”

결혼으로 시카고에 정착한 때가 1978년 4월이라는 김경자(사진•영어명 Kay)씨. 한동안 전업주부로 딸 둘을 키우는데 전념했다.

주택을 마련하는 과정 중 부동산 공부를 시작,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에이전트로 일한 지 어느 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6개월 간 하나의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했으나 얼마 후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컴퓨터도 그리 흔하지 않아 두꺼운 부동산 책자를 보면서 집을 찾아주는 시절이었다. 비퍼를 차고 연락이 오면 공중전화를 찾아 다녔다고 회상한다.

“바이어와 함께 셀러 집 밖에서 딜을 하는 등 새벽까지 운전하고 다녔죠. 이메일도 흔치 않던 시절, 고객을 뺏길까 봐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는 최근 5년간 한인 커뮤니티를 떠났다. 기웃거리지도 않았다는 자신의 말처럼 오직 집안 일에만 신경을 썼다.



두 딸이 모두 결혼한 후 마음이 공허했다. “삶의 목표가 없어졌지요. 의욕이 상실되더라구요. 정말 워커홀릭으로 여행도 못 다닐만큼 일에 빠졌었는데…. 가끔 골프만 치러 나갔어요.” 그는 스트레스를 피해 음악을 듣고 TV를 보고 책 읽고 연속극 보면서 음식 만드는데 치중했다고 털어놓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도 최소화했지만 작년 연말부터 세상 일이 궁금해졌다. 뭔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딸들도 “You can do it.”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슬슬 세상을 향해 손짓을 보냈어요. 먹고 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일 자체를 즐긴다는 의미로 부동산 딜도 몇 개를 했어요”라며 웃는다.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시기를 지나 ‘옛날의 김경자로 돌아가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세명의 손주(7세, 5세, 2세)를 두었다. 작은 딸은 글렌뷰에 거주한다. 큰 딸 은 LA에 산다. “따뜻한 LA로 이사 가려고 집도 보고 했지만 4계절이 있는 이곳이 편안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포기했다.” 그는 보수적인 동네이지만 시카고만한 곳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커뮤니티로 돌아온 이제는 건강하게 운동하면서 양로원 방문 혹은 어려운 아동을 후원하는 일 등에 신경을 쓸 예정이다.

한인회 수석부회장에서부터 평통, KOWIN, 로타리클럽, 여성회에 참여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용히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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