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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변수가 주는 여행의 매력.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백 년 만의 홍수라는 허리케인 하비를 온몸으로 직접 겪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슬슬 여행이 하고 싶어 졌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일상에도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게 여행이 아닌가! 두려움과 함께한 촉박한 복구 여정이 어느덧 뜻하지 않은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기에 더더욱 변화가 필요했다. 물론 6개월 전에 한국에 두 달 남짓 다녀왔지만 그것은 여행이라는 느낌 보다는 내 집이 아닌 친정, 시댁에서의 단기 거주라는 느낌이 강해서인지 Martin Luther King, Jr Day 를 끼고 화요일까지로 계획한 플로리다 템파(Tampa)로 떠나는 이번 여행이 무척 설레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토요일 새벽 4시에 우버(Uber)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서 6시 비행기를 타고 템파에 도착. 겔버스턴(Galveston)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도 바다가 고파지면 위로가 되는 겔버스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템파의 비치들을 고대하며 해안가로 내달렸다.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그래도 플로리다는 플로리다라고 믿었다. 젊은이들은 건강한 몸을 과시하듯 비치발리볼을 하거나 해안가를 따라 달리기를 하고 노인들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비치 의자에 앉아 은빛 갈치 떼들이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플로리다의 해변을 생각했지만 텍사스에서 혹시나 하며 들고 간 털 달린 파카가 무색하게 뻥 뚫린 해변의 겨울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사실, 계절이 겨울임을 감안하더라도 이상기온임이 확실했다. 가뜩이나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 핸드폰만 딸랑 챙긴 아들 녀석이 아빠의 파카를 뺏어 입는 바람에 계획했던 돌고래 크루즈를 날씨가 가장 좋은 화요일, 마지막 날로 예약 변경을 하고 근처 주변의 해안을 돌았지만 이미 매서운 바람에게 기가 눌린 탓인지 플로리다의 비치를 맘껏 사랑해줄 수가 없었다. 템파에 거주하는 지인도 어제까지는 해변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오늘 갑자기 추워졌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날은 남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려 사라소타(Sarasota)로 이동했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전날보다 훨씬 더 포근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다소 삭막한 텍사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웠다. 바닷가의 차가운 바람을 배제한 풍경은 따사로운 햇살 조명이 더해져 평생 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아이들 학교 때문에 힘들다면 나이 먹고 은퇴하면 살까? 사람일은 모른다지만 정말 그러고 싶었다. 대부분 은퇴해서 살고 싶어 하는 곳은 아리조나, 켈리포니아, 플로리다처럼 따뜻한 지역인 선벨트 주들이다. 참, 우리가 살고 있는 텍사스 주도 빠지지 않지만 바닷가에서 쭉 나고 자란 나는 바다가 주는 위로를 알기에 플로리다의 바다가 더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계획한 대로 되지 않기도 했지만, 예를 든다면 아침에 하려던 카누타기를 오후에 한다던가, 점심에 먹으려고 했던 레스토랑을 저녁에 간다던가 하는 누가 봐도 사소한, 간만에 떠난 여행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힐링을 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 월요일 저녁에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예스! 숙제 안 해도 된다!’하고 환호를 했다. 휴스턴의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화요일 학교가 문을 닫았단다. 와우! 그냥 애들을 하루 결석을 시키려고 계획했었는데 쉬는 날이 되어버렸다. 어쩜 이렇게 날을 딱딱 잘 맞춰 잡았나! 우리 가족은 앞날을 내다보는듯한 탁월한 선택을 자축하며 신나게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날은 좀 쌀쌀했지만 수영장 물이 따뜻해서 수영을 할 만한 날씨는 되었고 또 상대적으로 휴스턴이 엄청 춥다니 추위를 피해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플로리다로 여행을 온 것이 목에 힘이 바짝 들어갈 정도로 뿌듯했다.

다음 날, 플로리다의 날씨는 첫날 우리를 구박한 것을 사과라도 하려는지 따뜻함을 선물했다. 아침부터 패들보트를 타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미뤘던 돌고래 크루즈를 하러 St. Petersburg로 향했다. 근처 해안도 둘러볼 겸 일찍 출발해서 40분 전에 도착을 하고 이메일을 확인 하던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휴스턴 공항의 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우리의 저녁 비행기가 취소가 되어버렸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에 전화연결을 시도 했지만 상담원과 통화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화요일이 휴교이니 하루 더 쉬면서 수요일에 휴스턴으로 돌아오면 되지 싶었지만 하필이면 수요일에 남편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꼭 화요일에는 휴스턴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미팅 참석 안하면 짤려? 그냥 놀다 가자! 라는 날라리 기질을 보이는 나에게 범생이과인 남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인터넷을 검색해서 3시 15분에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의 좌석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공항으로 차를 돌렸다. 공항에 도착해서 오스틴으로 발권을 하고 안도하기도 잠시,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서 4시 넘어서 탑승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삼십분... 비행기 센서의 결함으로 비행기를 교체한다고 해서 6시로 미뤄졌다. 공항에 앉아서 투덜거리는 사이 아들은 또 한 번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수요일도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다. 참, 아빠의 미팅만 없었다면 오히려 반전이 낳은 완벽한 휴가를 만끽할 수 있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티켓만 사놓고 쓰지도 못한 돌고래 크루즈가 또 한 번 씁쓸하게 생각났다. 편하게 휴스턴에 도착해서 우버타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에 오스틴 공항에 내려서 또 차를 빌려서 두 시간을 넘게 운전을 하고 결국엔 홈 스위트 홈을 외치며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휴스턴의 도로 상황은 안 좋았다. I-10곳곳은 통제가 되어 있었고 곳곳에 빙판길로 인해 처박힌 차들 때문에 경찰차들이 출동해있었다. 그리고 한밤에도 차들이 쉬지 않고 쌩쌩 달리는 I-10에서 차량 다섯 대만이 조심히 슬금슬금 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저 앞차는 이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걸까? 모르지, 누가 아파서 응급실 가는지 아니면 우버 기사인가? 집에 거의 다다르자 긴장이 풀린 남편의 무심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뜻하지 않은 변수에 힐링과 피곤을 넘나드는 여행을 마치고 추억 통장에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저축한 셈이 되었다.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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