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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열 목사 종교칼럼: “하나님의 시간”

벌써 10월을 맞이하고 한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소원을 갖고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하였던 것을 돌아보자. 어떤 기도제목들은 그대로 응답되었고 어떤 것은 여전히 기도제목으로 남아있다. 마음에 소원은 꺼지지 않은 채 여전히 기도제목으로 남아있는 우리들의 형편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 마음의 생각과 소원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경우들이 많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길이 다르다고 선언하신다. 이사야 55:9절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이 추구하는 길과 그 생각의 차이가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적용하는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좇아 하나님의 시간을 사셨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갇히고 얽매이고 제한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좇아 행동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배우게 되면 사람들의 시간개념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원한 시간 개념을 갖고 보면 천년과 하루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사람의 수명이 70- 80 이라도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신속히 지나가고 날아가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그러나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가 언제나 함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똑같은 분이십니다. (히 13:8)



하나님은 인간처럼 시간에 제한되지도 않으시며 인간의 기준에 따라서 시간을 측정하지도 않으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시간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게 된다면, 제약된 인간의 시간 개념에서 오는 절망과 스트레스로 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고 천국의 풍요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좇아 살기로 작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시간보다 자기의 시간을 좆은 사람들은 그 인생에서 치명적인 불행의 씨앗을 만들어 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까지 25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여종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고 이 이스마엘이 오늘날의 중동지역을 차지하며 이슬람교를 믿으며 이스라엘과 분쟁의 역사를 낳게 되었다.

모세는 자기의 지혜와 의로 세운 시간에 맞추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려 했지만 도리어 살인자로 광야에 쫒겨 살게 되었다. 이때 나이가 40세이다. 그는 광야에서 40년을 목동으로 지내야 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이세벨 왕비가 엘리야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더욱 악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자기가 예측한 부흥의 시간이 좌절되면서 자기 조상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고백하며 죽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엘리야가 생각하는 운명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기대하지 않았던 7000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해 두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새 역사를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2000년 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세주가 왔지만 여전히 자기들이 생각하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세상을 다스리는 힘 있고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다.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메시야의 오심은 이스라엘이 환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의 시간을 부인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시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얼마나 많은 오류와 불행을 경험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가 지연되고 우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좇아가셨는지를 묵상하고 적용해야 한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는 것을 믿으셨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르는 자는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두번째, 하나님의 시간을 좆는다는 것은 내가 정한 시간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상황은 그 누이들의 행동을 민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서둘러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의 도우심을 청하였다. 그리고 제자들도 이러한 요청에 예수님께서 민첩하게 대응하시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민첩한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오히려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예수님은 왜 민첩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늦추셨을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정한 시간표에 얽매어서 이리 저리 움직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좇아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내용은 다분히 우리가 계획한 시간표에 하나님이 응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다니엘 금식기도, 40일 작정기도, 일천번제 헌금과 기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도한다. 그리고 그 시간표의 시간이 가까울수록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속이 타서 부르짖는다. “하나님 급해요! 빨리 빨리.....”

우리는 교회성장에 대하여서도 우리의 시간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선교에 대하여도 그 열정이 너무 커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하여 복음을 한시 빨리 열방에 전파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몇 년도에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이다” 라고 선언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급한 마음에 휘둘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표를 따라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시간표를 따라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 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기도의 모습이다.

세 번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의식하며 살아가신 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을 좆는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 비록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 같아도, 질병 속에 있어도, 재정적인 어려움에 있어도, 인간관계에 상처가 있어도, 실패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어도, 자존심이 무너져 마음이 깨져 있을 때도,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바로 그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인 것이다.

네번째, 하나님의 시간을 좆는 과정을 통하여 성도의 믿음은 성장하고 든든해 진다. 오늘 우리의 형편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 시간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는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을 좆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을 더 많이 신뢰하고 그분을 좆기로 결정해야 한다.

이대열 목사 (열매맺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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