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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 시계

편리해지려고 만든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 인류 역사상 전화기만큼 편리한 것이 또 있었겠는가? 전화기 때문에 얻는 편리함도 많지만, 그 전화기에 얽매여 사는 고달픔도 만만찮다.

인간의 삶을 옥죄는 또 다른 문명의 이기는 '시계'다. 수렵과 채취, 농사를 삶의 바탕으로 삼고 살던 시대에는 굳이 시간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때도 해시계나 물시계 같은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재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분초를 다툴 필요는 없었다.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간을 알려주는 쓸모없는 장치를 집안에 두기에는 너무도 컸고 또 비쌌다.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주고 그 정한 시간대로 움직이게 할 필요가 생긴 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정해놓은 시간에 줄을 지어 기계의 부속품처럼 맡은 일을 하며 산업화 시대를 발전시킨 것은 시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시 도시마다 광장에 달린 시계는 그 도시가 가진 기술력의 상징이었고 자부심이었다. 비록 하루에 몇십 분씩 틀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 시계가 알려주는 대로 출퇴근하며 삶의 모양새를 바꾸어 나갔다. 시계가 발달하면서 세상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계에 따라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졌다.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부터 사람들은 시간에 더 얽매이게 되었다.

몇 년 전, 값비싼 시계를 만드는 회사들끼리 모여 신상품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중력에서 오는 오차를 없앤 최첨단 시계에서부터 보석으로 안팎을 장식한 화려한 시계까지, 최고의 기술력과 예술적 감각을 동원해 만든 시계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그런 시계 중에서도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시계가 있었는데, 그 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 없었다. 자그마한 유리창 너머에는 시침이나 분침 대신 미로찾기 게임을 하도록 만든 칸막이와 그 칸막이를 누비고 다니는 작은 구슬 하나가 전부였다. 비록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 시계지만 값은 만 불이 넘는다고 한다.



제조 업체는 '여유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 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시간에 얽매여 사는 바쁜 어른의 삶을 잊고, 시간에 거리낌없이 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라는 의미에서 분침과 시침 대신 미로판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시계 광고에 등장하는 한 유명인은 '단절하라, 벗어나라, 감사하라, 이해하라, 상상하라, 꿈꿔라, 즐겨라, 느껴라, 생각하라, 놀아라, 창조하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시간을 내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하루쯤 시계를 없애고 살아보면 어떨까? 시간에서 벗어나서 '감사하고, 이해하고, 상상하고, 꿈꾸고, 즐기고, 느끼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 시계 광고가 끝날 때쯤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 "천천히 하라."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 시계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천천히 한다고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그새를 못 참고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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