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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A 수혜자 김정우씨 삶] 미국아, '꿈의 사다리' 걷어차지 마오

3남매 무작정 미국으로 이주
10대때 부터 궂은 일 도맡아
누나 결혼식 입장 막히기도
다카 수혜자, 10만 달러 수입
지금은 민족학교서 근무중
"아이들은 카지노 칩 아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청소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인 다카(DACA)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마지막 갱신 날짜도 당장 내일(5일)이다. 이민서비스국(USCIS)에 따르면 한인 다카 수혜자 수는 1만명 가까이 된다. 쉽게 말해 1만개 꿈의 사다리가 걷어차이게 된 셈이다. 한 청년을 만나 DACA와 신분 문제를 되짚어봤다.


1997년 겨울 한국에 '경제 쓰나미'가 덮쳤다. 크고 작은 사업체가 줄도산했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끝없이 성장할 줄 알았던 부실한 경제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IMF 사태는 '경제 피난민'을 양산했다.

경제 난민, 김정우(33)씨는 1999년 작은 누나가 먼저 가 있는 가주 부에나파크로 급하게 이주했다. 그는 10대 때부터 '투잡'을 뛰어야했다. 식당 설거지, 접시 치우기, 신문 배달, 발레파킹 등 세상 모든 잡일은 다 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졸기 바빴다. 공부할 틈이 없었고 안 하니 재미도 없었다.



"어느 날 구인구직 정보지를 폈어요. 그런데 딱 두 가지 빼고 다 해본 일이었어요. 안 해 본 일이라고는 뭐더라… 꽃꽂이, 네일리스트 정도?"

신분에 대한 첫 고민은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정우씨는 가주의 한 대학교에 원서를 넣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사회보장번호를 요구하면서 친구들보다 10배나 많은 학비를 요구했다. 유학생 기준으로 학비를 청구한 것이었다.

"기억하기로 한 수업 유닛당 150달러를 내야했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 불법 체류 신분이 무엇인지 생각했죠".

파트타임 캐시어 일을 악착같이 해도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21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처음 그를 맞이한 건 혹독한 추위였다. 그는 온풍기가 있는 지하철에서 며칠 노숙을 했다. 의사소통 문제로 집 계약을 못해 졸지에 노숙자가 된 것이다.

며칠 뒤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에서 재고정리와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밤을 보냈다.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추위를 견딘 날도 있었다. 다행히 정우씨는 한 목사와 업주의 도움으로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전 7시에 나가 새벽 늦게 들어왔다. 일주일에 80시간은 족히 일했다. 그렇게 번 돈은 2000달러 정도. 너무 피곤해 몇 번이나 쓰러졌다.

"정부가 지원하는 500달러짜리 아파트 쪽방에서 잤어요. 화장실은 공동으로 썼는데 밤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 떼가 우르르 도망가곤 했죠. 마약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어요".

가게에는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많이 왔다. 손님들은 부자들이 사용하는 신용카드인 '블랙카드'로 계산을 했다. 정우씨는 그들에게 다가가 돈을 벌 수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답은 '대학'이었다.

동부는 학비가 비싸 2006년 LA로 왔다. 이듬해 사이프리스 지역 칼리지에 원서를 넣었다. 그런데 서류미비자라며 학교가 퇴짜를 놓았다. 주법상 가주에서 졸업한 고등학생들은 입학이 가능했지만 학교가 그를 거부한 것이었다. 신분이 또 태클을 걸었다.

정우씨는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6개월 만에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같은 처지의 학생 100여명도 덩달아 학교에 입학했다.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2010년 3번째 드림액트가 하원을 지나 상원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을 무렵 정우씨는 캘스테이트 풀러턴 대학으로 옮겨 운동생체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드림액트 지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배지와 티셔츠를 팔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드림액트의 중요성에 대해 몰랐다. 법안도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로 막혔다.

"제 티셔츠에 불법 체류를 순화한 말인 '언다큐먼트(undocument)'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불법체류 신분의 친구들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죠. 이게 바로 너라고, 너!".

다행히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다카(DACA)' 행정명령을 내렸다. 합법적으로 운전도 못하고, 이가 아파도 치과 병원비가 비싸 방구석을 구르던 시절은 안녕이었다.

"다카가 있기 전에 누나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신분증이 없으니까 카지노 통과를 못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안내원이 한눈 팔 때 몰래 예식장에 들어갔죠".

합법 신분이 된 그는 2014년 한 대형 금융회사에 취직을 했다. 길거리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하루에 손님 20~30명을 만나며 금융 상품을 팔았다. 곧 입사 4개월 만에 LA 전체 지사에서 1등을 했다. 순식간에 10만 달러 넘게 수입을 얻었다. 곧 여성 의류 업체가 그에게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했다. 그에게 다카는 '황금 사다리'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고연봉직을 그만두고 한인 비영리재단인 민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어렵게 얻은 신분으로 돈만 버는 것이 공허했다고 한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도 그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정부 정책에 따라 그의 운명도 소용돌이 치고 있다.

"사실 다카는 한시적이라 언젠가 폐지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드림액트가 통과되도록 힘을 모아야 해요. '어떻게 되겠지' 관망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공화당이 제시한 '석시드 액트(SUCCEED Act)' 법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석시드 액트는 드림액트에서 후퇴한 내용으로 나이 16세 미만, 임시 영주권 10년 등이 주요 골자다.

"아이들을 쥐고 흥정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칩이 아니니까요".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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