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스크린에도 슬로 라이프…느리고 소박한 김태리표 제철 밥상

임순례 감독 신작 '리틀 포레스트' 주연
70년된 고택에서 철마다 농사 지으며 촬영

'효리네 민박' '윤식당' 등 예능계를 휩쓴 슬로 라이프가 극장가를 노크한다. 2일 부에나파크 CGV에서 개봉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 얘기다. 일본에서 2부작 영화로 제작된 동명 만화를 토대로 연애도, 취업도, 되는 일 하나 없던 20대 혜원(김태리 분)이 서울을 떠나 고향에서 홀로서기에 나선 사계절 시골살이를 실제 계절 변화에 맞춰 촬영했다. 경북의 70년 된 목조 고택을 통째 빌려 지난해 1월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2~3주간 농사를 지어가며 찍었다니 '현실판 삼시세끼'가 따로 없다.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씨앗 사서 우유갑에 심곤 했는데 잘 키우질 못했어요. 이번에 촬영하며 심은 씨감자가 다음 계절 싹이 났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그 기쁨은 좀 남다른 것 같아요. 보통 땐 못 느끼고 살잖아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주연배우 김태리(28)는 "사계절 자연을 담은 장면들은 더 오래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면서 "영화의 여백이 나한테도 힐링이 됐다"고 했다. 제작에 1년 가까이 걸린 탓에 '1987'과 개봉 순서가 바뀌었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그가 1500대 1의 경쟁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데뷔한 후 처음 찾아온 단독 주연작이었다.

황우석 사건을 다룬 '제보자' 이후 4년 만에 이번 신작을 내놓은 임순례 감독은 "'아가씨'에서 까맣고 깊은 눈을 보고 속이 깊은 친구구나 생각했다"면서 "자기중심이 잘 서 있고,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타고나서 혜원 역에 잘 어울렸다"고 했다. 후줄근한 '몸빼' 차림도 거뜬히 소화하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감을 잘 땄다고 자부하는 김태리다. 임순례 감독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은 영화 오프닝부터 직감된다.



영화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시골집이 혜원의 귀환으로 온기를 되찾으며 시작된다. 교사 임용고시엔 떨어지고, 냉장고 음식은 썩어가고….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형광등 불빛 아래 파리하게 시들어가던 혜원은 어느 겨울 불현듯 고향에 돌아간다. 얼어붙은 노지에서 배추를 뜯어 국을 끓이고 한 줌 남은 쌀로 갓 지은 밥이 집에서 먹는 첫 끼다. "배가 고파서…." 왜 돌아왔느냐는 소꿉친구 은숙(진기주 분)에게 혜원이 들려준 대답. 비로소 밥 다운 밥이 그의 몸에 뜨끈한 온기를 채워 나간다.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도호쿠 지역 시골에서 자급자족한 경험을 살려 펴낸 원작 만화가, 이미 시골생활에 익숙한 주인공 이치코의 차분한 여름나기로 시작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느리고 소박한 사계절의 위안
'아가씨''1987'의 김태리 돋보여


중국 영화를 준비하던 중 '제보자'를 함께 만든 영화사 수박의 제안으로 일본판 영화를 봤다는 임순례 감독은 "매일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지치고 웃음기 없는 얼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요즘 사는 게 너무 비슷하잖아요.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잘 살고 있는 걸까' 불안감도 크죠. 관객들에게 편안하고 휴식 같은, 조금 다른 방식의 삶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김태리는 "혜원이 나와 비슷해서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면서 "고민을 속으로 삭이고 혼자 해결해보려는 독립적인 성격이 닮았다. 우리 엄마에 대한 내 정서가 보통은 아니다. 길게 설명할 순 없지만 엄마에 대한 혜원의 감정에도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남편이 일찍 죽고 하나뿐인 딸을 심지 곧은 애정으로 키웠던 엄마(문소리 분)는 혜원이 수능을 치른 지 얼마 안 돼 자취를 감춘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다"는 편지만 남기고. 임순례 감독은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부분"이라 했다. 원작에선 이치코가 더 어릴 때 엄마가 말없이 사라진다. 남의 농장과 마트에서 일하며 이 악물고 버틴 주인공은 스무 살이 돼서야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원작과 달리 근처에 고모네가 살고 친구들이 자주 드나들도록 한 것도 "한국에서 젊은 여자 혼자 외딴 시골에 산다는 게 불안하게 여겨질 것 같아서"(임순례 감독)였다.

향긋한 아카시아꽃 튀김을 와삭 베어 무는 봄, 달밤에 다슬기를 줍는 알싸한 여름, 눈밭에 길을 내며 수제비 반죽이 익기를 기다리는 겨울까지, 큰 사건 없이 혜원이 친구들과 땀 흘려 키운 작물을 맛있게 요리해 먹고 푹 자는 나날이 전부인데, 덩달아 찡하고 위로가 된다. 늦겨울 곶감이 익어가는 속도에 맞춘 듯 서두름 없는 전개는 바쁜 일상에 젖어있던 관객이 서서히 숨을 고르게 해준다. 김태리·류준열·진기주, 또래인 세 배우의 유쾌한 호흡도 마음을 붙든다.

메뉴 선정도 심사숙고했다. 일상적인 한국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콩국수, 시루떡, 막걸리 등이 그 예다. 또 식용 꽃을 화사하게 올린 파스타, 서양 디저트인 크렘 브륄레는 엄마, 친구들과의 관계가 담긴 메뉴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요리 시범을 보이면 배우들이 배워가며 연기했다. 김태리는 "하나같이 맛있어서 스태프들이 놀랄 만큼 쉴 새 없이 집어먹었다"며 웃었다. 영농후계자인 친구 재하 역의 류준열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5시에 아침밥을 먹을 만큼 건강한 먹성을 자랑했다고 한다.

자연주의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경기도 양평에서 "13, 14년째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고 있다"는 임순례 감독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하다. 3층 높이에서 떨어뜨려야 하는 송충이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려고 모포를 깔아놓고 구출했다고. 혜원의 곁을 지키는 진돗개 오구는 개농장에서 구조한 성견과 천안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강아지가 2견(犬)1역을 했다. 어린 오구는 '리틀 포레스트'의 구정아 프로듀서가 입양해 키우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강산에서 기르고 거둬 요리하는 순간까지 곧장 따라 해도 될 만큼 정밀한 레시피로 매 먹거리에 자연을 엮어낸 일본판에 비해 요리 과정을 볼거리 위주로 간소화했다는 것. 이치코의 시골집이 허름한 외관부터 나무주걱을 좀먹는 습기까지 생활감이 뛰어났던 데 반해, 혜원의 시골살이는 잡지에 곧장 실어도 될 만큼 예쁘게 매만졌다는 인상도 든다.


나원정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