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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성도는 진리의 편에 서는 사람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LA중앙일보] 발행 2019/03/19 미주판 27면 기사입력 2019/03/18 19:05

증자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대부들이 사용하는 화려한 자리를 바꾸라고 했지만, 아들 원은 병중이시니 내일 아침에 바꾸겠다고 대답했다. 증자는 이를 보고 "군자는 남을 사랑하기를 덕으로 하고, 소인은 남을 사랑하기를 눈앞의 것만 보고한다" 말하며 바른 도를 따라 자리를 바꾸라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이 말이 바로 고식지계이다.

이런 고사를 읽다가 제일 놀라는 것은 이런 조그만 일에도 정도를 걷겠다는 옛 선인들의 결기다. 그러다 보니 요즘처럼 법을 교묘히 이용해서 모양새만 갖추려는 모습은 '살아남아 힘을 가진 자가 정도'라는 새로운 신앙 행태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주위에서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비중을 가졌다고 말하는 교회에서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려는 일들이 너무 당당히 일어나고 있으니 무슨 역사적 의미나 책임을 묻기 전에 도대체 그 배포가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고 우리의 은밀한 죄까지도 모두 고하게 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심판의 자리에 우리를 위하여 서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다고 외치면서 한편으로 자신이 행하는 죄에 대해서는 당당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너희가 어찌 죄 가운데 더 살겠느냐"는 말씀을 성경에서 잘라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하나님을 앞세워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더러운 이익'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은 화려한 침상이 옳지 않다고 여겨 병 중에도 자리를 옮기라는 아버지와 병중이니 옮기지 않으려는 꾀를 내는 아들이나, 모두 훈훈한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눈과 귀가 있는데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우리 목사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시는 분이니 그런 거짓말이나 편법들은 용서가 되는지도 모른다. 본인에게 잊을 수 없는 신앙의 도움을 주셨을 수도 있다. 그래도 훈훈한 이야기보다는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성도다.

어릴 적 연극을 할 때, 소품을 구하는 일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의자에 종이로 '난로'라고 써붙이고, 사람을 세워놓고 '나무'라고 붙였다. 연극이니까 모두 그렇게 웃으며 넘어가 주었다. 그렇다고 난로라고 써붙인 의자가 따뜻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곳 저곳에서 면죄부를 받아도 세상이 죄를 씻어주지는 못한다. 써붙인 명패로는 즐겁고 행복할 수 없다. 자신의 귀만 막으면 울리는 기적 소리가 없어지는 것인가.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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