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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협력해 북핵 민간용 전환 돕는 것이 최선책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 인터뷰

민간 협력 통해 신뢰 쌓이면
비핵화 기간 단축할 수 있고
남북 공동우주 개발도 가능
완전한 핵 신고 신뢰 없인 어려워
북한, 30~36개 핵무기 보유 추정
CVID는 처음부터 비현실적 목표
트럼프 첫 임기 내 해결 불가능
북한 비핵화 최소 10년 잡아야


북한 핵에 관한 최고의 외부 전문가로 꼽히는 시그프리드 헤커(74) 박사는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이며 핵무기 전문가다. 2004년 처음 북한에 가 영변 핵시설을 직접 둘러본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매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 용기를 손으로 만져보고,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눈으로 확인한 유일한 미국인이다. 폴란드 태생으로, 1956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한 그는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서 금속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맨해튼 계획에 따라 세계 최초의 핵무기를 만든 로스앨러모스 미 국립연구소에서 86년부터 97년까지 소장으로 활동했다. 2009년 미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에너지 부문 상인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았다. 현재는 스탠퍼드대 명예교수 겸 부설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이 뭐라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놀랍지 않았다. 싱가포르 회담 후 일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사람들은 기대했지만 사실 회담 그 후가 중요하다. 다음 절차를 어떻게 밟아나갈지는 복잡하고 중차대한 문제다. 비핵화 합의를 했다고 하지만, 그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부터 문제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담았는데, 그 둘을 어떻게 맞물릴지도 세부 조율을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의 첫 조치로 핵 신고 리스트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종전선언부터 하자고 맞섰다. 양측 요구를 어떻게 보나.

“완전한 핵 신고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북 간에는 아직 그런 신뢰가 없다. 신고하면 검증을 해야 하는데, 이는 긴 시간을 요하는 지난한 문제다. 영변 핵시설 리스트 정도는 초기에 가능할 수 있지만, 완전한 신고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종전선언은 정치적인 문제로, 수용 여부는 미국이 결정해야 한다. 언젠가는 종전선언이 나오겠지만, 현 단계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첫 발자국은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의 감소(risk reduction)’다. 더는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핵 개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루토늄을 더는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이 바로 그 영변 핵시설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공동 선언에서 언급했다. ‘미국이 상응 조처를 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는데. 미국이 진지하게 검토할만한 매력적인 제안인가.

“물론 진지하게 검토할만한 제안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북한으로선) ‘진짜 빅딜(a really big deal)’이다. 거대한 핵 단지인 영변에는 핵 프로그램의 핵심인 5㎿ 원자로가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면 이것은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다. 플루토늄 없이는 핵 개발에서 유의미한 진전을 이뤄낼 수 없다. 물론 조건이 달렸기 때문에 더 지켜볼 일이다.”

-일각에선 영변 핵시설이 노후화했기 때문에 북한의 제안이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는데.

“영변 핵시설에 직접 가 봤기에 하는 말이지만, 난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영변 핵시설이 노후화했다는 건 맞다. 그러나 여전히 가동이 가능하다. 내가 2010년 영변을 방문했을 당시엔 5㎿ 원자로를 아직 재가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장의 핵 과학자 중 최고위급에게 ‘너무 노후화해서 가동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그건 2003년에도 들었던 말이고, 우린 재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13년 실제로 재가동했다. 즉 영변 핵시설은 낡긴 했지만, 가동 가능하며, 이 시설을 폐기한다는 건 중대한 일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를 유관국 참관하에 영구 폐쇄하겠다고 합의했는데,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인가.

“동창리 서해 미사일 발사장의 주요 목적은 위성 발사이지 ICBM 발사가 아니다. 북한은 (이동식 발사장비를 이용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미사일을 발사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동창리 발사장을 해체하겠다고 한 것이 나를 놀라게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발사장이 미래에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적 우주 개발을 위한 위성 발사 용도로 계획됐기 때문이다. 난 북한이 평화적 우주 개발 프로그램을 위해 이곳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국제적으로 구성된 참관단을 꾸린다는 것은 신뢰 구축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도 일부에선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데.

“나는 실질적 진전이었다고 평가한다. 북한이 물론 풍계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갱도를 팔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 5월 ‘동결→복귀→제거’의 3단계 ‘북한 비핵화 10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15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 완료를 언급하고 있다.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보나.

“그렇게 되면 굉장히 좋겠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상황이 개선돼 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서로 신뢰가 부족한 상태다. 모든 핵무기와 물질, 시설의 일괄 폐기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3단계를 제시한 것이다. 먼저 동결을 하고 두 번째로 점진적 폐기(roll back)를 위한 절차를 밟아 위험을 줄이고,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함께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도 없애야 한다. 이런 점진적 과정을 거쳐 완전한 폐기에 이르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첫해엔 동결, 그 뒤 5년 간은 복귀, 즉 점진적 핵 위험을 감소시키고, 10년 안에 완전히 제거한다는 프레임을 그래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정치 상황에 따라 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비핵화가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드디어 깨달은 것인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세부사항에 있어선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비핵화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실무진도 이 점을 이해했다고 본다.”

- 6월 25일 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북한의 군용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민간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한국과 미국이 돕는 것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참신한 발상이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년 로드맵’에서 관심사는 비핵화에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단축하느냐다. 비핵화는 종국적으로 ‘비무장화(demilitarization)’로 이어져야 한다. 그 열쇠는 군사적 이용에서 평화적 이용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것이고, 한국과 미국이 함께 나서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에 한국과 미국 핵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함께 들어가 평화적 용도로의 전환을 돕는 것이다. 비핵화 걸리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단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원자력 발전이나 진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등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진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미국과 한국 인력이 영변에 들어가 있으면 검증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미사일 기술을 민간용으로 전환하는 걸 한국이 돕는다면 남북의 우주 공동개발도 가능할 수 있다. 발상을 바꾸면 가능하다. 실현만 될 수 있다면 최고의 아이디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로 바꿨는데. 민간용까지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트럼프 행정부도 인정한 셈인가.

“난 처음부터 CVID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가역적인(Irreversible)’이라는 ‘I’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핵심은 핵 프로그램의 비무장화이고, 그것을 검증하는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앞선 말한 민간용 전환이다.”

-7차례나 방북하고 영변 핵시설을 둘러본 유일한 미국인인데,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얼마나 될 거로 추정하나.

“2004년 첫 방북에서 그들은 내 손에 유리 항아리 속에 봉인된 플루토늄을 쥐여줬다. 2010년 일곱 번째 방북에서 그들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줬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핵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핵 과학자들은 매우 프로페셔널했고, 인간적이었다. 북한이 현재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을지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추정은 가능하다. 2017년 말까지 25~3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보유했다고 본다. 올 9월 말 현재는 5~6개 정도 더 만들었을 수 있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것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실제로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보나.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ICBM으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지다. 북한은 각각의 필수 부품은 완성했지만, 그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완전체로 발사하는 실험은 부족하다. 화성- 14형과 화성- 15형 실험에서 북한은 여러 가지 이유로 멀리 가는 대신 높이 쏘는 고각(高角) 발사를 택했다. ICBM 능력이 있다는 것은 증명했지만 실제로 핵탄두를 탑재한 ICBM이 미국까지의 긴 궤도를 정상 비행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직은 그 능력까진 갖추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북한이 노동 또는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 서울이나 일본을 향해 발사할 능력은 실제로 갖췄다는 거다. 한국인과 일본인뿐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는 미국인들도 희생시킬 수 있다. 김정은이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하는 말은 믿지 않지만, 북한이 현실적 의미에서 억지력을 갖춘 것은 맞다. 한국과 일본, 또 거기에 사는 미국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미국을 북한을 공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물질·핵무기를 일부 은닉할 경우, 찾아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적대관계가 이어진다면 불가능하다. 검증 자체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검증한다고 해도 불확실성은 남는다. 신뢰와 협력이 은닉을 막는 열쇠다.”

배명복 칼럼니스트


정리=전수진·김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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