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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질문 기회를 줬던 친절한 대스타

내가 만났던 코비 브라이언트

26일 정오가 조금 넘을 무렵. 교회에서 친구가 놀란 듯 외쳤다. “들었어? 코비 브라이언트가 죽었대!” 배에 주먹을 한방 맞은 것 같았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LA 레이커스 스테이플스센터 홈 경기를 전담 취재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이름을 거의 매일 보고 입에서 말했던 시절이다. 최고의 LA 스포츠 스타니 당연했다.

그는 한국과 한인 언론은 물론, 일본과 중국, 독일 등 해외 언론 기자들에게 친절했다. 꼭 질문 기회를 줬다. 그 점이 항상 고마웠다.

그의 플레이에는 다른 선수들에게 찾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분노’가 있었고, ‘킬러 본능’이 있었다. 승리로 만족하지 않았다. 상대를 때려눕혀 기를 죽여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선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블랙 맘바(Black Mamba)’다. 맹독을 가진 뱀. 그렇게 코트를 15년 이상 누볐다.



은퇴 뒤 “천부적인 능력 보다 초인적인 노력을 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선수 시절 수면시간은 3시간. 새벽 2시, 3시에도 수시로 슛코치에게 문자를 보내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ESPN 스티븐 A. 스미스와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자는 시간처럼 아까운 게 없다”고 했다.

수퍼스타지만 레이커스 멤버 중 가장 먼저 훈련장에 도착해 슛 훈련을 했다. 코비와 마이클 조던을 모두 코치했던 필 잭슨 전 레이커스 감독은 둘을 비교할 때 이렇게 말했다. “연습량에서 코비를 따를 자는 전세계에 없다. 불가능하다. 마이클도 안다.” 그 결과 3점슛 등 외곽슛에서 조던을 넘어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팀 훈련캠프 당시에는 새벽 4시15분부터 오전 11시까지 훈련했다. 다른 선수들은 오전 8시에 기상. 코비가 이미 3시간30분 이상 훈련한 뒤다.

조던은 골프와 탁구, 포커 등 여러 취미생활을 즐겼지만 코비는 일과 취미가 모두 농구였다. 그래서 스포츠 관계자들은 코비의 은퇴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농구를 중단하면 정체성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순조롭게 제2의 인생을 열었다. 벤처기업가인 제프 스티벨과 함께 투자 회사 ‘브라이언트 스티벨’을 만들었고 월가에서 주식부자도 됐다. “농구만큼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고 했다.

또 단편 애니메이션 ‘디어 바스켓볼(농구야, 안녕)’을 제작해 이 부문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다. 동화책도 여러권 집필했다. 폭스스포츠 베테랑 논객 스킵 베일리스는 “제2의 인생을 이렇게 멋지게 사는 스포츠 스타는 처음 본다”고 했다.

코비는 한 인터뷰에서 “농구에 대한 미련이 단 1%도 없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농구 열정에 불을 지폈다는 뉴스가 나왔다. 차녀인 지아나가 농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자 딸을 WNBA 선수로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지아나를 두고 “나를 쏙 빼닮았다"며 좋아했다.

코비는 사우전드 오크스에 세운 맘바스포츠 아카데미로 가려다가 지아나와 함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지아나가 소속된 농구팀 경기를 감독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제2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 중 농구를 가장 못했다고 한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만 새삼 깨닫게 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원용석 디지털부장 won.yongsuk@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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