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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뜨락에서]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

펭귄은 휴식을 취할 때 바다 밖으로 나온다. 얼음 위에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놀다가 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펭귄의 무리들은 뒤뚱뒤뚱 줄을 서서 바다로 걸어간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순간 펭귄들은 멈칫한다.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많아 금방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범고래, 상어, 바다표범, 물개 등 천적들도 많기 때문이다. 바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한 마리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이기고 잇따라 뛰어든다. 처음으로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배가 고팠다. 누구보다도 간절해서 용기를 갖고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때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도 뒤따라 뛰어들도록 이끄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 바닷속과 같은 불확실성을 우유성(偶有性)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과감한 퍼스트 펭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일은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항상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재빨리 2등으로 출발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침내 1등까지 앞지른 2등 전략이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였다. 언제나 눈치 보기와 비굴한 처신을 하며 오로지 시험을 잘 보는 머리 좋은 영악한 인간이 두각을 나타냈다. 과감하게 시도하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면 생존율이 3~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번 탈락하여 낙오자가 되면 취업을 하거나 경력을 쌓는데 치명적인 결격사유로 작용한다. 다시 역전의 기회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체재에서 젊어서 실패하는 것은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낙오자를 만들어버렸다.

기러기 떼 지어 날고 서풍은 계절을 재촉하는 듯하지만, 백두산 호랑이 한 번 울어대면 곧 동녘 하늘이 밝아올 것이다. 지금 달리는 여기가 바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전쟁터 만주 벌판이다. 천하가 편안한지 위태로운 지는 언제나 만주 벌판에 달려 있었다. 만주 벌판이 편안하면 나라 안이 잠잠하다. 만주의 서북방향 따싱안링(大興安嶺) 산맥과 남동방향에 백두산이 있는 장백산맥에 둘리어져 있는 곳이 '동북(東北)평야'로 발해가 있던 지역이다.

압록강을 건너 광활한 만주 벌판을 처음 대면하고 감격한 연암 박지원이 이곳이야말로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외쳤다. 저 만주 벌판과 같이 한없이 드넓은 세계로 나선 해방의 기쁨은 통곡으로 밖에는 표현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좁은 국토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를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니 휴전선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온 우리들이 얼마나 답답증에 걸려 병이 됐을까? 누구보다도 갑갑증을 느꼈던 내가 먼저 바다 속 같이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유라시아 대륙으로 뛰어들었다. 만주벌판을 달리면서 지나온 생을 반추해보니 특별히 앞으로 나서서 한 일도 없었으면서 늘 경쟁에서 지는 못난이였었다. 그 못난이가 뒤뚱뒤뚱 퍼스트 펭귄이 되어 유라시아대륙을 다 달려서 이제 며칠이면 단둥에 도착한다. 압록강은 내게 빙하의 끝자락 같은 곳이다. 이제 평화와 통일의 물고기가 가득한 압록강 너머로 뛰어올라야 한다. 내가 퍼스트 펭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강 압록강과 임진강을 건너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강명구 / 수필가·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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