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클래식 TALK] 여백과 희망

지난 수요일 첼리스트 양성원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카네기홀을 찾았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파리 고등 국립음악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인디애나 대학에서 야노스 스타커와 공부했다. 그와 함께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는 양성원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이자, 최고의 바리톤 가수 마티아스 괴르네를 비롯해,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아키코 스와나이와 같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활약하는 연주자이다.

필자의 유학생 시절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에 한참 꽂혔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코다이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다. 일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작품을 남기지도 않았다. 85년의 생애 치고는 남겨진 작품의 수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작곡가보다는 음악교육가로서의 영향이 더 크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그의 음악교육 이론은 독특하고 체계적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코다이의 철학은 현대 음악교육의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코다이의 작품 중 솔로 첼로를 위한 소나타는 그의 오랜 후견인이었던 엠마 샹도르와의 결혼 이후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 곡은 여타의 곡과는 달리 첼로의 낮은 두 줄인, C(도)와 G(솔) 음을 반음씩 내려서 B(시)와 F#(파#)으로 조율한 후 연주하게 되어 있다. 피아노로 비교하자면, 건반 88개 중 낮은음 30여 건반을 반음씩 낮춘 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런 피아노로 연주하면 오른손의 고음 부분과 왼손의 저음부가 조화를 이룰 리가 없다. 그래서 조율을 특수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악보만을 가지고 분석하면 말이 안 되는 작품이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조율을 바꾸지 않고 일반 첼로를 가지고 이 곡을 연주해도 이상해진다. 코다이는 이런 특이한 조율법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다.

이 특이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첼리스트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특수 조율과 관련되어 악보를 익히는 것이 까다로왔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곡이었기 때문에 연주 불가능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솔로 소나타가 태어난 지 100년이 조금 지난 지금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하고 있지만, 해석의 성서와 같이 여겨지는 음반은 수년 전 타계한 야노스 스타커의 연주이다. 헝가리 출신의 그는 인디애나의 작은 도시 블루밍턴에 살았는데, 그의 집에 있던 작은 수영장이 코다이 덕분이라 말했을 만큼 이 음반을 통해 그의 존재감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에 빠져있던 십수 년 전, 거의 모든 상업 음반은 물론,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기록용 녹음까지 수집해 들었던 적이 있다. 옛날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릴 테이프를 커다란 재생기에 조심스럽게 걸면서 다양한 연주자들의 해석을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름 있는 한 첼리스트의 비공개 녹음을 발견하고 큰 기대를 가지고 듣다가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과연 야노스 스타커 말고는 없단 말인가. 거의 포기할 즈음 젊은 첼리스트 두 명의 코다이 녹음을 발견했다. 둘 다 스타커의 제자들로 졸업 연주 실황 녹음이었다. 그 중 마크 코소워는 현재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양성원이었다. 그는 ‘무반주 곡’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단단한 구조를 허물지 않은 채 튼튼한 테크닉으로 곡을 지배하다가도 느리고 여백을 주는 부분에서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20대 연주였는데 녹음을 들으며 느꼈던 안정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돌을 쌓을 때 빽빽하게 틈을 채워나가다간 모진 비바람에 넘어가기 쉽다고 했다. 단단함 사이사이에 놓인 적당한 공간과 여백이 완전한 건축물을 만든다. 양성원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또다른 헝가리 작곡가인 리스트의 느린 곡들로만 전반부를, 쇼팽의 작품들로 후반부를 구성했다. 그는 촘촘한 기교를 자랑하는 대신 영감있는 여백들로 가득한, 대담하면서도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무대를 꾸몄다. 그런 그를 보면서 십수 년 전 도서관 한 구석에서 헤드폰을 통해 만났던 그때 희망과 안도감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아, 우리에게 저런 첼리스트가 있었지!’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