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름다운 우리말] 욕을 하다

우리말은 욕에 관해서는 좀 특이한 언어인 듯합니다. 욕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욕을 친근감의 표시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욕쟁이 할머니가 전통의 상징이고, 그리움의 상징이 되니 말입니다. 외국인의 경우 한국 사람이 친할수록 욕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친한데 왜 욕을 할까요?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제일 어려운 일이 욕을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욕이 어렵습니다. 저도 욕을 잘했습니다. 쉼 없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지요. 속사포처럼 말입니다. 이제 욕을 하지 않는 것은 욕을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욕을 할 일이 생겨도 그저 점잖은 말투로 몇 마디를 하곤 합니다. 화를 내기도 하지만 이미 욕은 빠진 말입니다. 욕 없는 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떨 때는 발음마저 정확한 표준어로 화를 냅니다. '저러면 안 되지?'라는 훈계와 적절한 비판과 분석이 뒤 따릅니다. 때로는 껄껄대며 너털웃음을 웃기도 합니다. 마치 무언가에 통달하였거나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말입니다. 욕이 정말 힘들어졌습니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나 장식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내 삶에서 빠져 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오해하고 의심하는 상황에 무척 불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남에게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예전의 내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감정을 쏟아낼 수는 없는 거였습니다. 괴로움은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듭니다. 잠도 잘 안 오고, 밥도 먹히지 않는 몇 며칠이 지나갔습니다. 또 몇 며칠이.



욕망이 사라지는 건조한 경험 속에서 감정도 점점 메말라 감을 느꼈습니다. 그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치 종교에서 방언이 터지듯 주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내 속에 머물러 있던 썩은 감정이 터져 나온 겁니다. 아직 욕이 내 속에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튀어나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저녁 밥이 맛있어진 겁니다. 그날 밤 전보다는 조금 더 길게 잠을 자게 된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눌려 있던 감정이 터지면서 억눌린 욕망도 밖으로 나온 겁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일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은 내 힘든 감정에게도 문을 열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욕은 종종 욕망을 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물론 욕이 일상화 되어 있는 사람은 이런 감정을 느끼기 어렵겠지요. 욕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은 욕을 줄이기 바랍니다. 그래야 욕의 효용성을 맛보게 됩니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욕은 내 감정이 살아있음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욕이 자주 터져 나오지는 않겠지요. 자주 할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자주 욕이 터져 나온다는 말은 자주 괴로운 일이 생긴다는 뜻일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터져 나온 욕에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욕은 괜찮지 않을까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