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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그림찾기] 소품에도 계획이 다 있구나

박승모, Maya 2078, 철망, 2017. [사진 박승모 스튜디오]

박승모, Maya 2078, 철망, 2017. [사진 박승모 스튜디오]

이 집 거실 벽엔 TV 대신 미술품이 걸려 있습니다. 흑백사진이나 연필 소묘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게 그림이 아닙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숲 이미지는 얇은 철망을 11장 겹쳐 만들었습니다. 겹겹의 철망은 허공에 떠 있는 듯, 연기처럼 사라질 듯한 숲의 모습이 됐습니다.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네 고급스러운 취향을 완성한 이 그림, 박승모(51)의 ‘마야(Maya) 2078’입니다. ‘마야’는 산스크리트어로 ‘환(幻)’,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작가입니다. 반투명한 철망 재질이어서 작품 뒤로 사람이 지나가면 저렇게 보입니다. 뒤에서 조명을 비춰야 비로소 숲 모양이 그림자처럼 살아나고, 불이 꺼지면 그저 검은 벽처럼 보입니다. 그럴싸하지만 텅 빈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찰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동아대 조소과 졸업 후 1990년대 중반 인도로 건너가 5년여를 명상과 수행으로 보낸 박승모는 알루미늄 사슬로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슬로 칭칭 감아 만든 미륵반가사유상 등 초기 작업은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로 인연을 맺은 이하준 미술감독이 ‘기생충’을 위해서는 ‘마야’를 빌려왔습니다.

이 감독은 미국 ‘건축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봤을 때 숲속의 고요하고 고독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사장 집에는 워낙 고가의 소품이 많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1억4000만원 정도로 가장 비쌉니다. 비싸고 매끈한 것들로 그득한 이 집에 저 숲 작품처럼 알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고, 안온해야 할 집은 그때부터 위험한 곳이 됩니다.



뉴욕 집에서 전화를 받은 작가는 20여 년 전 경기도 여주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내·아이와 살던 시절을 돌아봤습니다. 네, 우리는 모두 반지하 가족입니다.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자칫하면 지하로 전락할 것 같은 불안이 교차하죠. 그가 알려준 숲 그림의 비밀은 또 있습니다. 작품을 위아래로 겹쳐 놓으면 딱 맞습니다. ‘데칼코마니’, 영화 ‘기생충’의 원제처럼 말이죠. 영화 속 미술품마저 참으로 ‘상징적이고 시의적절’합니다.


권근영 / 스포츠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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