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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하얀 의자, 검은 의자, 빨간 의자







하얀 의자에 단정한 여자가 바닥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아는 여자다. 반가웠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또 불렀다. 흘끔 나를 보더니 부리나케 입구 쪽에 있는 검은 의자로 옮겨 앉는다. 나는 다시 그녀가 옮겨 앉은 의자 쪽으로 갔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룸을 나갔다. 왜 저러지? 당황해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다가 그녀가 버리고 간 검은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순간, 그녀와의 관계가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와 친해지려고 그동안 했던 내 행동과 말들이 떠올랐다. 기분이 나쁜 것도 잠시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더는 그녀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됐다는 것이 왜 이리 자유로울까? 그녀의 거부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세이브 해줬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정돈을 해줘 고맙기까지 하다. 갑자기 그녀가 없는 횅한 주변을 둘러보는 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아무도 없는 룸을 나와 옆 룸으로 갔다. 내가 아는 여자가 하트 모양의 빨간 의자에 앉아 있다. 내가 싫어하는 여자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나를 만나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단다. 언젠가 나는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유까지 들어가며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자기를 거부하는 나를 기다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네가 아무리 나를 싫어해도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인가? 아니면 너는 못 됐어도 나는 워낙 관대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를 용서한다인가? ‘제발 나를 용서하지 마세요. 싫다는데 왜 나에게 자비심을 베푸시며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냐고요. 제발 나를 붙잡지 말고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자비 베풀며 사랑받으세요. 나도 너 싫어. 하고 떠나라고요.’ 외치다 꿈에서 깨어났다.



한밤중에 깨어나 꿈 이야기를 쓰며 피식피식 웃고 있다.



골치 아픈 철학적인 모임도 고상한 우아한 모임도 싫다. 그저 재미있는 웃고 떠드는 부담 없는 모임이 좋다. 철학적 용어를 늘어놓는 지식을 논하는 모임은 이 나이에 정신만 혼란하게 할 뿐 굳이 기억해서 말하고 쉽지도 않다. 고상하고 우아한 모임도 불편하다. 장단을 맞추기에는 전혀 그런 쪽으로 외모나 말본새 그리고 성질이 받쳐주지 못한다.



내가 그나마 조금 떠들 줄 아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부딪치는 농담조 이야기다. 그것도 상대가 받아쳐 주지 못해 혼자 웃다 얼빠진 년처럼 끝날 때가 대부분이다. 도가 지나쳐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겐 미안하다. 다음엔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되풀이된다. 술이나 홀짝거리며 어쩌다 운 좋게 만난 웃기는 사람과 함께하는 날은 기분이 좋다. 그런 날 내 몸은 엔도르핀이 돌고 스트레스가 확 풀려 몸이 가벼워진다.



세상은 변했는데 내가 아직도 주책스럽게 예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요즈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점잖아 설까? 헷갈린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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