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인터뷰] 뉴저지주 해켄색의과대학 교수 최민기 박사, 나눔과 봉사의 귀중한 가치를 전합니다

초기 이민 어려움 딛고 척추재활의학 전문의 우뚝
한인·주류사회에 끊임없는 기부와 헌신으로 존경

뉴저지주 해켄색대학병원 척추 재활의학 전문의인 최민기 박사는 이웃을 대한 나눔과 봉사의 삶은 재산의 유무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며 한인들 모두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미국에서 인정받고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뉴저지주 해켄색대학병원 척추 재활의학 전문의인 최민기 박사는 이웃을 대한 나눔과 봉사의 삶은 재산의 유무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며 한인들 모두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미국에서 인정받고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미국은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함께 경찰의 과잉 공권력 행사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등으로 혼란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100년 이상의 이민 역사를 갖고 있는 한인사회도 주력 경제분야의 변동과 이민 1세와 2세 사이의 세대 교체 등으로 정체성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미국과 한인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는 해결책으로 이웃과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인물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뉴저지주 해켄색에 있는 해켄색의과대학 교수인 최민기 박사(척추재활의학)가 그 주인공이다. 최 박사는 어린 시절 미국에 부모 형제와 함께 이민을 와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미 의학계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의 평가와 함께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이웃을 향한 나눔과 기부를 실천해 온 인물이다. 최 박사를 만나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의지, 평소 갖고 있는 삶의 철학, 살아 온 과거와 미래의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브롱스의 달리기 잘하는 동양 소년

최 박사는 한국에서 보건사회부 공무원과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던 부친과 이화여대 약대교수를 역임했던 모친, 그리고 형제 1명과 자매 2명 등 적지 않은 수의 가족과 함께 1970년, 초등학교 4학년(9살) 때 이민 와 뉴욕시 사우스 브롱스에 자리잡았다. 그는 어린 시절 발을 디디고 성장한 브롱스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우스 브롱스는 좀 험했습니다. 그 때는 길을 가다 어른들이 한국사람을 만나면 통성명을 하고 반가워하고 그럴 때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코리아’ 하면 지금의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처럼 어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저는 학교에서 수도 없이 따돌림도 당하고, 인종차별도 받고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 잘하는게 뭐냐고 하면 공격을 받거나 위험할 때 달아나기 위해 ‘달리기는 잘한다’고 이야기(실제로 달리기를 열심히 연습함)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최 박사는 자녀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지도에 따라 한글로 매일 일기를 쓰고, 토요일에는 놀러 나가기 전에 한국 신문 사설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등의 특별한 교육 속에 영민한 수재로 성장했다.

“그때는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모님들께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것이기에 이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 학생이었지만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중학교를 거쳐 브롱스사이언스 고교에 진학한 최민기 박사는 다른 형제 자매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4형제가 모두 의사) 졸업 후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가족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에 브롱스 수퍼마켓과 맨해튼 한인타운 등에서 막일, 영어 가정교사를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최 박사는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병원(Mt. Sinai Hospital Residency Hospital. 1988년)에서 뇌졸중과 척추절단 등 분야의 특수 훈련과 수련의 과정 등을 거쳐 현재는 미국 최고의 의료기관 중 하나로 평가되는 해켄색대학병원 척추재활의학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본래부터 척추와 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척추와 관련된 여러가지 질환과 치료를 하게 됐는데 최근에는 모두들 평균수명이 늘다 보니까 척추와 관절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이 많아 척추성형술 등 여러가지 치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나눔과 봉사의 삶

해당 분야 최고의 의료 전문가로 활동하면서도 최 박사는 오래 전부터 한인사회 봉사단체는 물론 타민족 단체들을 대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제가 어릴 때 성장하면서 힘든 과정을 지냈기 때문에 항상 저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후배들에게 본이 되고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평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에 뉴욕시 플러싱 YMCA 한인프로그램 이사장으로 봉사했고, 재미한인1.5·2세의사협회 창립 멤버로 참여해 회장을 맡았습니다. 그 후에도 나눔재단 이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한인사회 그리고 미국 소수민족들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최 박사의 소수민족을 위한 봉사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제시뱅크 파운데이션(Jessie Bank‘s Foundation)에 대한 기부다. 최 박사는 2017년에 비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제시뱅크 파운데이션이 주는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제시뱅크 파운데이션은 뉴저지주에 있는 소수민족 동네의 흑인과 히스패닉 고교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는 단체인데 한인은 물론 아시안, 다른 소수계를 통틀어 최 박사처럼 본격적으로 후원한 인사가 없었기에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인물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한인사회 봉사단체인 이노비 등 다양한 단체들에 적지 않은 후원을 해서 감동적인 내용의 감사 편지를 받는 등 늘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기부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는 해켄색의과대학에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한 것이다. 최민기 박사는 2017년에 전 AWCA 회장을 역임한 부인 원혜경(헤더 초이) 쇼미유어하트재단 대표와 함께 해켄색의과대학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300만 달러를 기탁했다.

“쉽게 기부를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젊은 시절 공부를 하면서 학비 때문에 고생을 했기에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12년 전에 외동아들(유진·당시 15세)을 잃었는데, 아이가 부모인 우리에게 원하는게 무엇인가도 생각해 봤을 때 보람된 일을 하면 아이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부를 결정했습니다.”

기부는 재산보다 마음의 문제

최 박사는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이웃에 대한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것은 한인들이 미국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인들이 미국에 온 것은 100년도 넘었지만 실제로 본격적인 것은 50년 정도인데 이제는 더 많은 한인들이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에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나눔과 봉사는 있고없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봉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고, 적어도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이는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박사는 자신이 “스스로 초창기 이민자이기에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알고 있다”며 “주류사회에 이민 1세로서 가입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앞으로 좀 더 나은 동포사회 그리고 좀 더 밝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열심히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심종민 기자 shim.jongmin@koreadailyn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