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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의 [부모 노릇 잘 하세요?]

갈등은 서로를 더 가깝게 해 주는 힘

“엄마! 나 쌍꺼풀 수술하고 싶어!”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하는 말이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행동으로 봐서 짐작 가는 일이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이구~ 우리 딸 눈이 어때서 쌍꺼풀을 해야 할까? 요새는 쌍꺼풀 한 사람이 하도 많아서 눈이 ‘얄프리~한’ 자연스러운 ‘얼짱’이 유행한다는 걸 잘 모르시나?”

그러면서 엄마도 너처럼 눈꺼풀이 얇아서 인기가 많았다, 아빠도 엄마 눈에 반해서 결혼했다, 엄마는 평생 그런 거에 신경 안 쓰고 살았다,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해서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그 아이의 풍선만큼이나 부풀어 있는 마음을 달래는 데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알지 못했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위로하기, 조언하기,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설득하기---.
그러자 딸 아이는 펑펑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요즈음 세상에 쌍꺼풀은 성형도 아니래! 엄마 자라던 때하고는 시대도 많이 변해서 부작용도 거의 없데. 눈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학교도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고, 친구도 만나기 싫단 말이야! 엉엉~”

어떤 말도 딸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안되겠다는 마음에 이런 제안을 했다.


“하이스쿨 마치고 대학 들어가기 전 여름 방학 때 하면 어떠니?”

“싫어!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3년을 있어야 되잖아! 이번 여름 방학 때 해줘~~~~~”

그 이후 딸 아이는 학교 가는 일 말고는 외출도 일체 하지 않고 매사에 짜증내며 거울 들여다 보는 일과 잠자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방과 후 학교 활동도 짧은 대답, “싫어!”로만 일관하고 친구들과 열심히 하던 채팅도 안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서울 강남의 어떤 성형외과가 수술을 잘 하는지 정보와 수술에 성공한 사람들의 사진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인터넷 상담을 통해서 양쪽 미간을 살짝 찢어서 눈이 커 보이게 하는 수술이 있다는 것도, 연예인 누구누구도 했다며 연구와 집착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졸랐다.


꾹꾹 참고 참으며 설득하고 달래던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공부하기도 모자라는 시간에 엉뚱한데 신경 쓰고 있어! 어른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잖아! 친구 중 단 한 명이라도 쌍꺼풀 수술한 아이 있으면 데려와 봐! 적당히 해야지 원!”
야단치기, 경고하기, 욕하기, 명령하기---.

이렇게 방해되는 말들은 너무나 골고루 사용했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는 공감적으로 들어 주기는 한 번도 못한 것을 대화법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의 욕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깨닫게 해 주려고만 한 것이다.


잠시 이러다 말겠지 하는 우리 부부의 생각과는 달리 딸 아이의 방황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게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가족 사진도, 학교 ‘Year Book’도 안 찍겠다고 했다.
일년 전만 해도 온갖 표정을 지으며 자기 사진 찍기를 즐기던 아이가---.

어서 빨리 이 혹독한 사춘기가 지나고 예전의 명랑하고 밝은 아이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다렸다.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너무나 힘든 시기였다.
이민 온 것까지도 후회 되고.

몇 달이고 의욕과 식욕마저 잃은 채로 끈질기게 성형에만 집착하는 딸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직접 자신의 눈으로 성형 안 한 한국 사람이 더 많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계기도 될 것 같아 여름 방학에 딸 아이를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이민 온 지 6년 만에 한국엘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이의 기분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 수술을 결정하는 걸로 하고. 한국 가기에 앞서 일본에 들려 며칠 묵으면서 먼저 일본 여자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길에서, 백화점에서, 십대들이 많이 나오는 하라쥬꾸 거리에서---. “저 사람 한 것 같아? 안한것 같아?” 매일 많은 일본 여자들을 관찰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다행히 뚜렷이 성형을 했다고 느낄만한 사람이 십대 소녀들에겐 찾을 수가 없었다.


딸 아이는 성형 대신 일본 여자들이 많이 쓴다는 쌍꺼풀 만드는 풀을 캐나다에는 없다며 4개씩 사면서도 자기 돈 거금 40달러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드디어 한국엘 도착해서 일단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치동 사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백화점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관찰하기 그리고 분석하기의 실전을 열심히 했다.


“저 여자는 화장으로 굉장히 자연스럽게 쌍꺼풀 없는 눈을 멋지게 보이게 했다?”

“저 여자는 성형한 것 같은데 되게 부자연스럽다~”
딸 아이 시선이 머무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면서 열심히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에 관해서 귓속말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여자 중 고교 앞에 가서 십대들을 관찰하는 시간도 빼지 않았다.


이런 절차를 지나 열심히 바르던 쌍꺼풀 약도 자꾸 눈꺼풀을 가렵게 하고 허옇게 일어나기도 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이젠 성형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일상의 명랑한 딸 아이로 돌아왔다.


딸 가진 부모라면 한번씩은 가볍게 또는 위의 엄마처럼 혹독하게 치르고 지나가는 것이 ‘외모에 대한 고민’ 아닐까 싶다.


용감하게 일본으로 한국으로 실전 여행을 떠나서 직접 경험하고 보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신 위의 엄마에게 ‘공감적으로 경청해 주기’와 비난 없이 ‘내 마음 전달하기’의 대화 기술이 더해졌었다면 좀 덜 혹독하게 치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위 사례의 엄마는 이젠 갈등은 더 이상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를 더 가깝게 해 주는 힘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파이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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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키즈빌리지 몬테소리스쿨 원장
한국심리상담연구소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전문 강사
BC Council for Families 주관 Nobody's Perfect 의 facilitator
문의 604-931-8138 , kidsvillage@sha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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