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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 18] 힘든 계절의 교훈

김종환 Dallas Baptist University 교수

그 해 여름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한국에서 18개월간의 방위복무를 마치고 텍사스로 돌아왔다. 입대 전에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복무를 마치고 한국에서 교수자리를 잡아볼 생각이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아올 방법을 모색하다가 결국 전공을 바꾸어 석사과정 학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방위근무를 하면서 학원에 나가 강의해서 받은 돈으로 생활하고, 남은 돈으로 세 식구 비행기표를 사고 학교 아파트에 들어가고 여름학기 등록을 마치니 지갑이 텅텅 비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지만 정기적인 검진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학교 근처의 햄버거집 앞을 지나갈 때 세 살 된 아들이 햄버거 먹고싶다고 해도 사주지 못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피부에 와닿으면서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기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다. 도서관의 1,2,3층을 오르내리며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유학생활 초기에도 해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청소도구와 약품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밀고 다니다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마주칠 때는 책장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들이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푸드스탬프(Food Stamps)를 받을 수 있었다. 푸드스탬프는 저소득 가정을 위한 식량보조 프로그램이다. 그 이름이 2008년에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으로 바꼈고, 그것을 줄여서 SNAP이라고 한다. 푸드스탬프 쿠폰을 받기 위해 사무실에 가서 자존심을 감추고 줄을 서있어야 했다.



임신 중인 아내와 세 살 된 아들 덕분에 윅 프로그램(WIC)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WIC은 Women, Infants and Children의 약자로서, 임신한 여성과 출산한 여성 그리고 5세 이하 아이들의 건강유지와 성장을 위해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WIC으로부터 우유와 치즈를 살 수 있는 쿠폰을 받았다.

사역자에게 사역지를 소개하는 학교사무실에 수십 장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타주에서 목회하시던 은사가 교육목사로 불러주셨다. 그러나 여건이 잘 맞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멀리까지 이사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접촉사고를 냈다. 가족과 함께 할인판매점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좌회전을 위해 길 중간에 서 있던 차를 박았다. 앞 차는 캐딜락이었고, 내 차는 현대 엑셀이었다. 비록 우박을 심하게 맞아 곰보가 된 액셀이었지만, 마음씨 고운 교인이 우리 가정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 거저 준 것이었기에 너무도 고마운 차였다.

집사람의 다급한 경고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급제동을 했지만 결국 앞 차와 접촉을 해버렸다. 내 차의 그릴은 많이 깨졌지만, 다행히 앞 차는 범퍼에만 흠집이 조금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찰로부터 두 장의 티켓을 받았다. 하나는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험 없이 운전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앞 차 운전자로부터 견적서를 받았다. 범퍼를 수리하는데 500불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름을 지내고 가을학기를 맞기가 너무 벅차보였다. 돌파구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한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총장을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아니겠는가? 최악의 경우 안된다는 답을 듣는 것 외에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총장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력서를 한 장 들고 총장실로 갔다. 마침 총장이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소개를 마치고, 이력서를 보여주고, 모교(Alma mater)의 첫번째 한인교수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총장은 내가 경력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임용할 수 없으니 경력을 쌓은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총장실에서 나왔다.

몇 주 후 다른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 학교 총장이 내 이야기를 듣고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거기서 5년 동안 경력을 쌓은 후, 드디어 모교로부터 초청을 받고 첫번째 한인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해 여름부터 시작하여 충분한 경력을 쌓기까지의 과정은 다음 기회에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해 여름은 미국에서 가장과 아버지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훈련기간이었다. 그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난과 극복, 고생과 인내, 신앙과 기도, 은혜와 감사, 용기와 도전, 그리고 봉사와 섬김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 신분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답답함과 조바심,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그렇다, 그것들은 감정들이다.

문제들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 해결해야 하지만, 감정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많은 경우 문제가 감정을 낳고,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여 문제를 악화시키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와 감정 사이에 우리 마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와 감정 사이에 있는 마음을 잘 다스리면 어떤 상황에서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민생활 가운데 힘든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힘든 계절도 언젠가는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올 것이라고....

김종환 Dallas Baptist University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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