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뉴욕의 맛과 멋] 재키의 동물농장

콜롬비아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재키를 나는 좋아한다. 언뜻 보면 얼굴이 만화 캐릭터처럼 코믹하다. 거대한 몸 탓에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다랗고 동그래서 그렇지, 살만 빠지면 큼직큼직한 이목구비가 웬만한 미인은 저리 가라 싶게 화려하다. 엄청 큰 몸에 비해 동작이 의외로 날렵하고, 늘 웃는 얼굴과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마주치는 동료들에게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아침 인사를 하는 하이톤의 우렁찬 목청까지 상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 재키가 특별한 이유는 그녀의 흰 가운 왼쪽 주머니를 뒤덮고 있는 야광 원색의 동물 캐릭터들 때문이다. 갈 때마다 그 요란한 야광의 오리며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 동물 캐릭터를 왼쪽 가슴에 훈장처럼 꽂고 나타나 혈압을 재고, 당을 체크하는 그녀가 처음엔 신기했고, 차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달 갔을 땐 동물 캐릭터뿐만 아니라 장미꽃까지 두 개나 가슴 한 가득 꽂혀 있어서 그렇게 가슴에 꽂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아, 이건 팬이에요. 내 팬들이 선물해준 것들이에요"하며 역시 하이톤으로 하하! 웃으며 시원스레 답해준다.

재키와 대화를 나누면 저절로 신바람이 나고 재미있다. 하하! 웃는 그녀의 익살스런 웃음소리에 조금 전까지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수술하기 전의 두려움이나 불안, 공포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녀가 다녀간 후엔 마취과의 레지던트와 수술실의 레지던트가 와서 많은 항목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오늘 해야 할 수술에 대해 반복적으로 묻고 답하는 지루하고 귀찮은 순서가 이어지지만, 재키가 선물처럼 주고 간 밝고 명랑한 기운은 그런 모든 귀찮은 절차를 상쇄시켜준다. 그것보다도 '나도 다음엔 선물을 준비해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재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같은 그녀의 해피 바이러스다.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가 없으면 그렇게 당당하게 웃으면서 일을 즐겁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없이는 그렇게 환자들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또한 그녀의 매무새 역시 한 곳도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고 청결하다. 프로가 무엇인지를 그녀를 통해 확인한 달까. 말과 행동이 그렇게 따뜻하고 역동적인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U-20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팬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18세 축구 천재 이강인 선수에게서도 나는 그런 프로 근성을 본다. 막내인 이강인은 경기 시작하기 전, 누구보다 애국가를 크게 부르면서 같이 뛰는 형들은 물론 응원하러 온 한국응원단에게도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열혈 애국지사다. 그렇게 애국가를 크게 불러 상대국 선수들의 기를 누르는 것도 어떻게 보면 경기의 한 필수요소일 수도 있겠다. 경기에 들어가서는 형들을 리드하며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로 형들의 골에, 아니 한국 승리의 견인차가 되는 결정적 골을 연결해내는 칼 패스는 팀 내에서 왜 '막내 형'이라 불리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그 모두를 팀의 공으로 돌리면서, 시합에 함께 뛰지 않은 선수들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배려하면서 항상 "형들이 잘 뛰어 주어서 고맙다"고, 고맙단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을 보면 비록 어리지만, 그 어린 소년이 얼마나 큰 산인지가 느껴진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이처럼 어떤 일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확고한 프로 근성이라는 걸 재키와 이강인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이지 않을까 싶다.


이영주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