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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기] 한국 서예전 '선을 넘어서'

잊고 살았다. 서예가 고품격의 예술인 것을. 서예의 글은 문학이며 서예 자체는 소통이라는 것을. LA카운티미술관 라크마(LACMA)가 기획한 석 달 반에 걸친 '한국 서예전-Beyond the Line'이 29일 폐막하기 전에 미술관을 찾았다. 2000년 한국 서예 역사가 선사, 고대, 중세, 근대와 현대를 망라한 92쪽 작품들로 함축되었다.

전시는 중국 미술 전문가인 스테판 리틀 큐레이터와 한국 미술 전문가인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의 4년 준비와 노고의 결정체다. 한국의 역사, 문화와 정체성이 엿보이는 한국 서예전은 서양에서는 처음이란다. 라크마는 해외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LA에서 한 장소에 모으기 어려운 국보급 작품들을 한국 미술관, 대학과 개인들에게 대여받아 단 한 번 뿐인, 완성도 높은 전시회를 마련한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서예는 작가의 인격과 성품을 품는다. 시대에 스며들어서 사회의 독특한 의식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서예전은 왕, 양반, 학자, 사대부, 승려, 화가, 노비, 대통령 등의 여러 계층의 작가가 종이, 나무, 직물, 금속, 돌, 칠기, 백자 등의 다양한 재료 위에 펼친 작품들로 망라되었다. 특히 안평대군, 신사임당, 추사 김정희, 이승만의 글씨와 광개토왕의 비문을 눈으로 직접 보고 성품과 시대상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왕의 업적을 새긴 비문을 찍어낸 탁본은 한국 고대의 서예다. 달필가인 효종, 안평대군, 신사임당, 김정희, 안중식, 이승만의 글씨는 중세와 근대를 대표하며, 안중근의 옥중 글씨와 독립운동가 오세창 글, 독립신문 한글과 영어판, 황성 신문은 일제 저항 시기의 한 조각이다. 세종의 한글 창제로 서예 문화 중흥이 일면서 전에 없었던 한글 서예 시대가 도래했다. 김정희가 아내와 며느리에게 쓴 한글 편지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현대 작가인 이응노, 김종원, 박대성, 정도준, 김순옥 등의 작품들은 추상화 같다. 이들은 전통적인 서예법을 재해석한 미래의 한국 서예를 보여준다.



나는 운 좋게 영국인 '피오나'가 50분 동안 15명 정도의 관람객을 열정적으로 가이드했던 그룹에 처음부터 끼어들었다. 개막 전에 3달의 열공으로 준비했다는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한글 단어를 써가면서 한국 서예와 문화를 극찬했다. 코리안 아메리칸인 하농 김순욱의 '무' 작품 앞에서는 "비움이 곧 채움"이라면서 해설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서예도구인 문방사우는 종이, 붓, 먹과 벼루를 뜻하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훈민정음 해례본과 화엄경, 고려의 목판술과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인지도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에 밀리는 한국 미술인데 라크마가 그 틈새인 서예를 콕 집어서 전시회를 기획한 것이 뿌듯하다. 피오나는 가이드를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전시를 가능케 한 버지니아 문에게 격려 편지를 쓰면 어떨까?" 이 지면을 빌어 경의를 표한다.


정 레지나 / LA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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